매일신문

다도해 일주-바닷속에 섬인가 섬속에 바다인가

남해바다 크고 작은 섬 80여개 사이사이를 곡예하듯 떠도는 유람선. 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흥분과 설렘…. 여기가 바로 청정특구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아닌가. 배가 지나가면서 하나하나의 비경들이 줄지어 속살을 드러낸다. 햇살에 반짝이는 투명한 쪽빛 바다에다 구슬을 꿰듯이 이어지는 작은 섬들의 파노라마. 저마다 제각각의 사연을 안고 있어서일까. 빛깔도 자태도 천태만상이다.

거기다 기암절벽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해송과 동백나무 숲은 운치와 감흥을 더해준다. 파도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 그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은 마치 푸른 보석처럼 빛난다. 첨벙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바다며 헤엄쳐 건너가고 싶은 섬들.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다도해의 진가는 몇 번이나 다시 찾아도 질리지 않는 상큼한 매력을 갖춘데 있다. 다도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중한 풍경이다.

지나가는 고기잡이 통통배를 따라 갈매기들이 달라 붙는다. 뭔가 얻어 먹을게 있는 모양이다. 섬 능선엔 누런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갯바위 여기저기엔 낚시꾼들이 또다른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다.

돌산대교에서 출발한 유람선의 안내방송은 지칠 줄을 모른다. 아니 연신 귀가 따갑도록 울려댄다. 끊어질 만하면 이어지는 작은 섬들의 연속에 맞춰 쉴새없이 볼륨을 높인다. 돌산도, 장군도, 불무섬, 향일암, 소리도 코바위, 코끼리바위, 금오도 합장암, 개도, 새도, 식도…. 이름을 새길수록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저 바닷가 동네에 살았으면 좋겠지예…". "저런 절벽 꼭대기에 어떻게 절집을 지었을까예". "저 무인도 이름은 뭐라 카던교". 대구에서 온 관광객들의 탄성 반, 놀람 반의 들뜬 목소리가 유난스레 크게 들린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 바다와는 인연이 없이 지내온데다 그냥 섬 일주인줄 알았는데 예상밖의 바다풍광에 목소리는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딸이 등을 내밀다시피 한 여행길이라는 배치문(63·대구시 동구 신천동)씨는 "그동안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라며 "대구로 돌아가면 딸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다"고 말없이 웃는다.

유람선 일주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돌산도 남단 금오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향일암(向日庵)이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은 낙산사 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4대 관음기도처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주변지형이 거북을 닮아 '영귀암'으로도 불린다.

향일암은 사람 발길이 과연 닿을까 싶은 기암절벽 위 8부능선쯤에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의 숲속에 둘러싸여 있는 나무로 짓고 기와를 올린 절집이다. 남해 수평선위로 떠오르는 일출 광경은 동해의 엄숙함과는 또다른 묘미를 준다는 설명이다. 특히 매년 해맞이 일출때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일상이 힘들게 느껴질때 찾는다면 새로운 활력소로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정원 605명의 220t급 97국동호 나종호(63)선장은 "매일같이 승객들을 위해 배를 운항하고 있지만 나도 가끔씩은 이름없는 무인도에 들어가고픈 충동이 일 정도로 보배 같은 곳"이라며 "나이들수록 애착이 간다"며 크게 웃는다. 3시간여 해상 퍼레이드가 눈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고 배가 다시 돌산대교로 진입할 때쯤 누군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내가 본게 섬이었나, 육지였나 그게 구분이 안서네. 다시 한번 봤으면 좋겠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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