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못배운 아픔도 이젠 추억"-올해 영남대 입학 44세 권영희씨

영락없는 여대생이다. 리포트 걱정에 시험기간이라서 밤샘공부를 해야한다는 걱정 부터 늘어놨다. 권영희(44·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대백1차아파트)씨는영남대 법 학부(야간) 1학년에 재학중이다. 1999년 고입검정, 2000년 대입검정과 수능시험을 치른 후 올해 대입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신입생. 권씨는 요즘 가능한한 대학생처 럼 보이려고 애쓴다. 오후 5시 넘어 집을 나섰다가 밤 10시가 넘어 돌아오는 생활 이 4개월째 계속되자 동네에서 춤바람이 난 것으로 소문난것이 그 이유.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사정으로 포기해야만 했던 학업. 그렇게 공부에 대한 미련 을 접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초등학교, 유치원에 각각 입학하고조금은 생활의 여유가 생기자 30여년동안 가슴 한켠에 묻어두었던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배우지 못한 한을품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입학하던 날 바로 주부검정고시학원에 등록했다. 1년간은 남 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아니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결혼 전엉겁결에 학력을 속였는데 검정고시를 준비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난 후 식탁에서 신문지로 책을 가리고 공부를 했다.막상 공부보다 책보 따리 숨기기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1년쯤 지나자 남편이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늘 집에 세워둔 승용차의 미터기 가 올라간 사실을 알게된 것. 애인 생긴 것 아니냐는 말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자 초지종을 듣고 난 남편은 자기도 결혼할 때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속였다는 말로 오히려 위로해줬다.

지금도 시집에선 학교다닌다는 사실을 모른다. 늘 시어른께 죄를 짓고 사는 기분 이다. 신문기사가 나가면 남편이 책임져주겠다고 했다. 지난 봄에 있은입학식 날 엔 밤새 한숨도 못잤다. 속으로 "나는 해냈다"는 말만 되뇌었다. 열을 들으면 금 방 아홉을 잊어버릴 나이. 그러나 그렇게 갈망하던 일이기에 대학생활이어려워도 힘든 줄 몰랐다. 수업 전 출석점검 때 교수가 다른 학생들 이름은 다 부르고 혼 자만 빠뜨려도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요즘은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공부 에 빠져들 때가 많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럽고 영어가 약해 걱정이 긴 하지만 한자(漢字) 깨우치는 즐거움과 남들 앞에서 당당해질수 있다는 자신감 에 행복하기만 하다. 이제 권씨는 또하나의 꿈을 꾼다.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것. 가능할 지 아닐 지는 모른다. 다만 판검사가 되고 싶었던어릴 적 꿈을 다시 꾸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배우지 못했던 아픔, 배우기 위해 애썼던 그 고통도 이제 권씨에겐 추억일 뿐이다 .

박운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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