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고재섭(28)씨. 푸른 유니폼에 유난히 검은 얼굴, 넓은 어깨와 184㎝의 건장한 체격은 틀림없는 야구 선수 폼이다. 그러나 그의 유니폼에는 백넘버도 이름도 붙어 있지 않다. 그는 경기 시작 전 운동장에 머물다가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모두 빠져나가면 다시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고씨는 삼성 라이온즈 운영요원이다. 경기시작 6,7시간 전 운동장에 나온다. 마운드의 흙을 고르고 감독, 코치들의 장비를 챙기는 일이 그의 일이다. 선수들의 생수 챙기기,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한 배팅 볼 던지기도 그의 몫이다. 그뿐만 아니다. 경기 중에는 투수들이 던지는 볼의 구질과 타구방향을 기록하고, 시합이 끝난 후에는 운동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그는 야구 선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난 98년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14년간 운동장을 누볐다. 고교 시절엔 청룡기 야구대회 준결승전에 올라 팬들 앞에서 멋있게 공을 던졌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고 97년 프로야구 2군 리그 다승왕에 오르기도 했다.
"1군에 가서 배팅 볼 좀 던져 볼래?" 지금은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 한 선배의 말이 그의 야구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1군 배팅 볼을 던지다보면 마운드에 설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고씨는 얼마 후 선수 복을 벗고 운영요원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엔 운동장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아는 사람이 보지는 않을까, 글러브 대신 물 호스를 잡고 마운드에 올라 물을 뿌리는 내 꼴이 우습기도 했고요"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 한둘이었을까만 그는 가슴에 묻어 두었을 수많은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는다. '슬프지만 울지 않는다'는 오래된 고사는 그를 위해 전해져 온 말처럼 보인다.
"지금은 괜찮아요. 팀에 도움이 된다면 계속 야구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고씨가 '1군 선수 몸풀기'에서 담당하는 일은 배팅 볼. 투수출신이라 그 일을 맡았다. 타자를 아웃시키기 위해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라 타자의 몸을 풀어주는 '스파링 파트너'인 것이다. 그는 매일 선발투수보다 훨씬 많은 공을 던지지만 거기에는 관중의 환호도 '스트라이크'를 외치는 심판도 없다. 직구와 변화구를 섞어 하루에 200~300개, 시속 130㎞에 가까운 공을 그만큼 던지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우리 팀 투수가 홈런을 맞을 때, 팀이 다 이긴 게임을 놓쳤을 때 마음 아프죠". 그는 팀이 아쉽게 패한 날엔 관중도 선수도 없는 텅 빈 마운드에 남몰래 오른다. '나라면 어땠을까' 무시로 떠오른 부질없는 생각을 모른체 하기에 고씨는 아직 젊다.
사람들은 고재섭씨를 '기록원'이라고 부른다. 익명의 '기록원'. 그에게는 더 이상 존재를 알릴 백넘버도 이름도 없다. 오늘 그가 입었던 푸른 유니폼을 내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입는다고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만큼 그에게는 팀의 우승 외에 다른 목표가 없다.
고씨는 애당초 박찬호 선수처럼 최고 스타를 꿈꾸지 않았다. 다만 1군 마운드에서 힘껏 공을 던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재능이 부족했지요".
자신에게 재능이 부족함을 알아차리고도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 고재섭씨. 자신보다 늦게 출발한 '야구천재'들이 앞질러 달려나가는 모습을 맥없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사람. 그는 '천재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숨죽인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필부 중 한사람이었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 8개 구단에는 고재섭씨와 엇비슷한 경력을 가진 운영요원(혹은 기록원) 30여명이 활약 중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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