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 팍 속에

깊이 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지난 70년대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지하 시인의 시이다. 이후 시인의 시적 궤적은 생명문제로 선회했다. 이 시는 우리 시사에서 저항시의 절창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를 읽으니 지금도 가슴이 쿵쿵 뛰는 듯하다.

90년대 초 한 일간지에 기고했던 시인의 글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가 발단이 된 김지하 논쟁이 최근 문단 일각에서 설왕설래다. 사람은 누구나 잠시 판단의 착오를 할 수 있다. 그 이후가 문제이다. 나는 시인의 해명이 좀더 정직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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