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유적.쉼터 즐비한 창녕

겨우 한 시간 거리로 가까우면서도 많은 대구 사람들에게 창녕은 남의 동네로 치부돼 왔다. 잘해야 휙 둘러 부곡온천이나 한번 둘러 갈까?

그러나 창녕은 그렇게 대해도 될만큼 수월한 곳이 결코 아니다. 화왕산 억새풀의 끈기, 은근한 문화.전통의 멋을 간직한 곳. 서쪽과 남쪽을 휘감아 흐르며 언제 찾아도 푸근하게 지친 심신을 품어주는 낙동강…. 생태계 보고라는 우포늪까지 어우러져 자녀들 공부에도 더없이 소중한 터전. 이 여름 자녀와 함께하는 답사지로 한번 택해 보면 어떨까?

◈대구권 곳곳에 가야고분군

◇풍광 좋은 접근로=풍광도 살필 겸 한다면 대구 사람들은 가창댐과 헐티재를 거쳐 풍각에서 우회전해 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비슬산을 훑어 가는 도로가 한가롭고 정겹다.

그렇게 접근해서 창녕읍 초입 쯤 될 때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길 가 40여기의 크고 작은 고분군. 본래 170여기 있었으나 일부가 복원돼 있는 것.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까지 축조된 가야시대 무덤들이다. 금동관, 순금 귀고리, 무구류, 토기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사적 80, 81호로 지정돼 있는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가야의 전형적 분묘 형태를 하고 있다.

인접해서는 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건물이 있다. 1999년 국도 5호선 확장공사 중 중요 유물이 다량 출토돼 이전 복원된 '계성고분 2지구 1호분'이 그것. 복원관 실내에서는 횡구식 석실, 금제 태환 귀고리, 목걸이, 팔찌 등 출토유물 모형을 볼 수 있다.

1996년 개관한 아담한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의 유물 700여점을 보여 준다.

◈'척경비'한반도 최고비석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 많은 곳=숱한 문화재가 널려 있어 창녕은 흔히 '제2의 경주'라 불린다.

박물관을 살핀 후 500m 정도 내려가면 '만옥정 공원'에 이른다. 꼭 둘러봐야 할 곳. 국보 33호 '진흥왕 척경비', 유형 문화재 231호 '창녕 객사' 등을 봐야 하기 때문. 척경비는 한반도에 있는 가장 오래된 비석. 객사는 300∼4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3칸 맞배지붕 형이다. 공원에서는 그 외에도 척화비, UN 전적비, 기념물 2호 지석묘 등도 볼 수 있다.

보물 310호 창녕석빙고도 창녕 가는 길에는 빼놓을 수 없는 견학 거리. 중간 두곳에 설치된 환기 통로에서 온도까지 조절했던 조상들의 슬기를 느낄 수 있다. 만든 지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안에서는 여전히 한기를 느낄 수 있다.

읍내에 있는 국보 34호 술정리 삼층석탑, 보물 75호 송현동 석불좌상은 경주의 석가탑과 석굴암에 비견된다.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한 중요민속자료 10호 하병수씨 가옥도 눈여겨볼만하다. 보물 520호 술정리 서3층탑, 보물 227호 탑금당 치성문기비도 있다.

좀 더 부지런하다면 20여분 달려 영산면까지 가보는 게 더 좋다. 거기도 사적 169호 석빙고가 있고 산성터도 여럿 만날 수 있다. 보물 564호 만년교의 모습에선 우아함이란 단어를 새삼 떠올리게 될 터. 중요무형문화재 26호 쇠머리대기 놀이의 고장이자 영남 최초의 3.1운동 발생지가 영산이기도 하다.

◈5만6천평 억새평원 장관

◇화왕산 산상 평원 체험=해발 757m인 이 산은 그 머리에 5만6천평 크기의 억새평원을 이고 있다. 발생 신화를 가진 국내 몇 안되는 성씨 중 하나로 창녕 조씨(曺氏)의 득성지로 치는 곳도 여기. 둘러 있는 산성에서는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충혼을 느낄 수 있다.

화왕산에서는 올해로 30년째 매년 10월 초 갈대제가 열린다. 전국 유일의 야간 산성축제. 3∼4년 주기로는 정월 대보름날 억새 태우기 행사가 전국 산악인 2만여명이 운집하는 가운데 열린다.

산에서 남서쪽 옥천마을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대숲과 노송이 에워싼 천년 고찰 관룡사가 나온다. 신라 8대 사찰 중 하나로 원효대사가 제자 1천여명에게 화엄경을 설했던 도량. 여기에도 문화재가 적잖아, 대웅전은 보물 212호, 여래좌상은 보물 519호, 약사전은 보물 146호 등등으로 지정돼 있다.

보물 295호 용선대 여래 좌상은 동짓달에 불공 드리며 한가지 소원은 성취된다고 해서 별명이 '팥죽 부처'. 수험생 학부모들의 치성이 한겨울에도 지극하다.

◈가시연꽃 등 희귀식물 보고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 우포늪=태고의 신비를 간직해 '자연의 고문서'로도 불리는 국내 최대의 자연 늪이다. 수천만년 전 낙동강이 운반한 토사가 지류 입구를 막아 만든 배후 습지. 넓이가 서울 여의도에 맞먹는 70만평에 달한다. 서식 생명체는 1천여종.

여름에는 노랑어리 연꽃, 부들, 창포, 붕머마름, 생이가래, 자라풀, 가시연꽃 등이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물을 뒤덮는다. 그 하늘은 실잠자리, 제비나비, 긴꼬리 명주나비 등이 수 놓는다. 중대백로, 흰뺨 검둥오리, 물닭, 쇠물닭 등이 맞추는 장단도 귀하다.

겨울이 오면 이번엔 철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 낸다. 쇠기러기, 큰고니, 황오리, 원앙, 청둥오리, 쇠오리 댕기 물떼새, 세계적 희귀종 가창오리, 노랑어리 저어새 등 몰려 드는 놈들이 2만여마리. 그 화려한 군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든다.

창녕.조기환기자 choki21c@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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