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실과 교류 '비판철학'필요

'철학과 현실의 관계설정에서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열암 박종홍(1903~76)의 철학 세계를 재평가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지난 3월 박종홍의 철학세계를 비판한 저서 '현실속의 철학, 철학속의 현실'을 출간,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경북대 철학과 김석수교수가 '한국철학의 현대적 모색'이라는 주제로 강연 및 토론의 자리에 나선다.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주최로 3일 오후 4시 경북대 박물관내 영남문화연구원에서 열릴 제5차 한국학 콜로퀴엄. '한국철학의 현대적 모색-박종홍의 경우를 중심으로'에 대해 주제발표할 김교수는 박종홍 철학에 관한 평가뿐만 아니라 철학과 철학자의 위치에 관한 생산적인 토론에 불지핀다.

박종홍 선생은 한국 근대화운동, 민족문화중흥운동, 국민교육헌장 제정, 유신체제 확립 등에 직접 참여한 철학자로 그동안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비판의 화살은 표면적으로는 '박정희 정권 참여'라는 과녁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그의 주체철학, 힘의 철학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기를 희망하면서 정권에 결합됨으로써 빚어진 것이다.

1930년대 근대적 의미의 한국철학이 시작할 때, 열암은 이미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실은 철학함의 출발점이고 기반이라고 본 것.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현실에서 박종홍 철학은 저항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김교수는 "그는 구체적 현실에 뛰어들지 않았고, 그의 현실은 '철학 속의 현실'에 머물렀다"고 보았다.

해방 이후 박종홍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띤 현실에 관심을 두면서 그의 철학은 개발의 민족주의, 반공의 민족주의로 바뀐다. 건설과 창조의 논리를 강조한 나머지 유신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고, 이 때부터 현실 속의 철학으로 변질된 그의 철학은 비판적 기능을 상실, 이데올로기로 옷을 갈아입게 된다. 김교수는 이에 대해 "그의 울분의 철학은 현실의 아픔을 서둘러 강력한 국가의 힘에 편승시킴으로써 유신정권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하는 꼴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김교수는 박종홍의 철학 자체가 유신 독재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소지를 안고 있다고 진단한다. 박종홍의 철학은 현실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초기의 주체에서 벗어나 힘있는 강력한 주체가 되어 타자 앞에 우뚝 서는 주체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즉 그의 힘의 철학에는 타자가 자리할 자리가 미약해지고, 주변부가 존재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이처럼 박종홍 철학의 흐름을 짚은 김교수는 "비록 현실을 떠난 철학은 아니었지만 현실이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현실의 힘에 종속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며 우리의 현실에서 어떻게 진정으로 철학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일관되게 물음을 던진다.

김교수는 박종홍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 철학이 현실을 다루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이해가 요구된다는 점과 철학은 현실 속에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으로 요약한다. 그동안 우리의 철학이 안고 있었던 비극은 '비판의 철학'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그는 "열암이 남겨 놓은 슬픈 주체성과 힘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철학과 현실이 일방적으로 오가지 않고 상호적으로 오가는 거리를 열어주는 '비판의 철학'이 되도록 노력하고, 이 비판의 철학으로 현실의 철학화, 철학의 현실화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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