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축구선수들이 무더위도 잊은 채 달린다. 드리블, 슈팅, 패스가 예사롭지 않다. 아줌마들이 무슨 축구? 혹시 다이어트용? 아니다. 땡볕에서도, 장마철의 칙칙한 날씨 속에서도 맹연습을 하는 것을 보면 안다. 살을 빼고 더 예쁜 몸매를 만들기 위한 취미교실이 아니다.
지난 29일 낮12시쯤 대구시 수성구민운동장. 악착같은 '아줌마'들이 성(性)으로 남녀를 구분짓는 또 하나의 일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들 25명 대부분은 아줌마들이다. 거의가 전업주부들. 평균연령 33세. 젊게는 23세부터 많게는 47세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이들은 대구지역 공공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지난 6월22일 출범한 '수성구여성축구단'선수들이다. 이때까지 운동과는 별 인연이 없었던 아마추어들이 대부분. 두 세명이 학창시절 육상이나 핸드볼 등 다른 종목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어설픈 동네축구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니다. 단장(정순천 대동테니스장 대표)과 감독(이환조 수성구생활체육협의회 사무국장)이 있고 코치(장승호 전 포항제철 축구선수)의 지도 아래 매주 화·금요일 2시간씩의 훈련을 소화해 낸다. 이들은 수성구청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선수단 모집에 자원했다. 그런 만큼 모두들 평소에도 열성 축구팬이라고 자부한다.
축구가 너무 좋아 2002년 월드컵 자원봉사자 모집에 지원했다 탈락했다는 정수욱(47)씨. 탈락의 아쉬움을 달래다 직접 축구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지원해 주장을 맡고 있다. 국가대표 유상철 선수를 좋아해 배번도 같은 6번이다. 지난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때 대구에 온 유상철 선수를 만나 기어코 유니폼에다 사인을 받아낼 정도로 축구를 좋아한다. "연령층이 다양함에도 팀웍이 너무 좋습니다. 운동을 같이 하다보니 마음까지 통하는 것 같아요"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수정(33)씨는 아줌마가 아니라서 안 뽑아주려는 걸 축구와 결혼할 생각이라고 부득부득 우겨서 겨우 선수가 됐다. 김씨는 "매일 밤을 새워야 함에도 훈련이 있는 화·금요일이 기다려집니다. 잠은 안자도 축구는 빼먹을 수 없습니다"고 말한다. 연습이 없는 날엔 집에서 축구경기 테이프와 책을 보며 분석하는 축구광. 이제 김씨에게는 사랑의 드리블로 결혼에 골인하는 일만 남았다.
열심히 지원하겠다는 남편의 약속까지 받아낸 신세대 주부 신순향(32)씨. 육상선수 출신인 언니 신숙화씨를 꼬드겨 가입하게 할만큼 직접 경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와 포지션 경쟁을 벌이더라도 절대 양보 못합니다. 축구에서는 내가 선배거든요". 공에다 스트레스를 실어 뻥뻥 차다보면 가슴까지 후련해진다는 신씨는 훈련 땐 갓 15개월을 지난 아기를 업고 나온다.
아줌마선수들이 헤딩과 태클도 할까?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했다. 훈련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 10월 서울 송파구청장배 여성축구대회를 첫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떤 거창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모두가 좋아서 열심이고 승부가 있어 거기서 이기면 더 좋을 뿐이다. 그래도 그들 모두 올 한여름은 축구공을 끼고 보낼 것이 분명하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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