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은 의사가, 조제는 약사에게"처방과 조제를 분리한 의약분업의 가장 큰 목적은 주사제와 항생제로 대표되는 약물의 오남용 방지였다. 항생제 등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전 없이 환자들이 구입할 수 없게 되고, 의사도 약을 처방하는 것에 따른 이윤이 사라져 의약품을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게 의약분업의 논리였다. 그렇게 되면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의 출현을 줄여 국민건강에 보탬이 되고 국민의 약제비 부담도 줄 것이란 게 당초 예상이었다. 과연 의약분업이후 약 사용이 줄고 국민의 약제비 부담도 줄어 들었을까?
◇사라진 약국의 임의조제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시행으로 연간 1억6천500만건이나 되던 약국의 임의조제가 사라져 항생제 사용량이 약 30%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상기도염(감기) 환자의 경우 항생제 사용량이 40.5% 감소했다는 것이다. 동네의원의 외래 건당 처방 약품목수도 분업전 2000년 5월 0.90품목에서 올 3월 0.83품목으로 줄었다. 동네의원의 주사제처방도 분업이전 68.98%에서 51.31%로 떨어졌다.
통계로만 본다면 무척 바람직한 징후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 내역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사와 약사들은 "의약분업 이전 약국과 동네의원에서 많이 사용했던 1차 항생제는 크게 줄었지만 2차 이상의 강력항생제 사용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샘플조사에서 의약분업 이후 개발된지 오래된 '페니실린'계통 항생제 사용량은 줄었으나, 고가의 강력한 '세페'계통의 항생제 사용은 3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이 어느 약을 처방하든 처방료는 같아 고가 항생제 처방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강력항생제 사용은 늘어
제약업계 등 관련업계에서는 보건복지부의 분석과 달리 의약분업 이후에도 항생제와 주사제 사용이 크게 줄지 않고, 의약품시장이 오히려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기대한 만큼 의약품 사용이 줄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신영증권 리서치센터가 지난달 7일 발표한 '항생제 시장을 통해 본 제약산업 전망'에 따르면 의약분업 이후에도 항생제 처방 빈도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 의약분업 이전 약국을 방문하던 환자들을 동네의원이 그대로 흡수하면서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항생제 처방건수가 대대적으로 증가했고 이것은 의료비 지출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동네의원의 85% 이상이 감기 등의 질환에 대해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으며 주사 항생제 처방 비율은 성인 74%, 어린이 60%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사제용 항생제 시장은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계속 팽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의료문화부터 바꿔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서는 전세계 평균을 상회하는 국내의 높은 항생제 수요는 의료소비자인 시민들의 항생제 선호 관행이 주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병.의원에서는 주사를 꼭 맞아야 한다'는 의약분업 이전의 낡은 의식이 아직까지 여전하며 의사들도 환자들의 요구에 맞춰 주사제를 처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병원과 의원의 경쟁구조로 돼 있는 의료전달체계도 고가 항생제 사용을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병원과 동네의원이 외래와 입원환자로 기능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환자와 같은 질병을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다. 개원의들은 "대부분 환자들은 약을 하루정도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이튿날 다른 의원이나 병원을 찾는다"며 "그러다 보니 한번 투약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강한 성분의 약을 처방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네의원은 환자들을 병원과 다른 의원에 뺏기지 않으려는 생존 차원에서 강력한 고가의 항생제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주사제와 항생제 처방을 줄이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뒤늦게 마련했다. 이 두가지 약품을 많이 쓰는 병.의원의 진료비를 깎겠다는 것이다. 항생제와 주사제 사용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줄이기 위해서는 약효가 강하고 비싼 약만 찾는 시민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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