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14기나 가동하고 있는 세계 9위의 원전 국가. 그러나 원전 보유 32개국 중 처리시설을 못갖춘 5개국 중 하나. 경제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가진 양날의 칼 같은 핵에너지 폐기물 처리장 문제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아 온 지 벌써 15년이나 되고 있다.
◇추진 과정과 정부 방안=핵폐기장 건설은 1986년부터 추진됐으나 늘 좌절돼 왔다. 1986~89년 사이엔 울진 등 동해안 지역, 1990년엔 안면도, 91년 초 다시 울진.청하(포항).양양(강원도), 1994~95년엔 굴업도가 거론됐다. 특히 울진은 두 차례나 거론되는 과정에서 주민 소요가 몇달간 계속돼 수십명이 연행되고 십여명이 구속되는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이에 정부는 궤도를 변경, 작년 6월부터 전국 46개 임해지역을 대상으로 유치 희망지 공모에 들어 갔다. 응하면 3천억원을 지원한 뒤 60만평의 부지를 확보, 2008년부터는 중.저준위 폐기물 80만 드럼, 2016년부터는 사용후 연료 2만t을 저장하겠다는 것. 이때 울진은 대상에서 빠졌다. 원전 4기를 추가로 건설한다는 조건이었다.
이에 전라도 영광.고창.강진.진도군 등 일부 주민이 잇따라 유치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런 청원은 군의회에서 번번이 부결되거나 군청에 의해 반려됐다. 이때문에 정부는 당초 지난 2월까지로 했던 공모 기간을 4개월 연장했다. 그러나 역시 허사.
지난 30일로 기한이 종료되자 정부는 자체적으로 부지를 물색해 건설키로 궤도를 다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울진 지역민 일부가 유치 청원을 한 때는 바로 이 갈림점이었다.
◇울진 현지인들의 태도=유치 희망자들은 일본의 로카쇼촌 전례에 주목한다. 3천억원이나 지원받게 되면 울진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인 것. 원전도 문제가 없는데 훨씬 안전한 폐기물 처리장을 놓고 그럴 게 뭐 있느냐는 논리도 있다. 원전반대 투쟁위가 해체된 것을 볼 때 주민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진 것이 틀림 없다고도 했다. 그러니 군민 투표에라도 부쳐 보자는 것.
물론 반대론자들도 여전히 단호하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후손들에게까지 위험시설을 물러줄 수는 없다는 논리. 참여자치연대 이규봉 사무국장은 "1990년대 초에도 그랬듯이 정부가 또다시 울진 군민들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근남 산포원전 후보지 해제 대신 기존 부지에 4기의 원전을 더 짓기로 하면서 군청이 정부로부터 작년에 이미 '핵 종식'을 보장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는 강경론도 있다. 이들은 반대급부 기대 역시 극소수의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몰아 세우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의 심각성=방사선을 배출하는 정도에 따라 △중.저준위 △고준위 등 두 가지 핵폐기물로 나뉜다.
앞의 것은 원전에서 사용된 폐필터.작업복.장갑.가운.걸레, 병원.연구기관 등에서 나오는 같은 종류의 것 등을 말한다. 원전 배출량은 200ℓ짜리 드럼으로 연간 2천700여 드럼에 달한다. 작년 6월 말까지 5만6천여 드럼이 원전 구내 임시 저장고에 쌓여 있다. 병원 등의 배출량을 포함하면 더 많다. 정부는 2008년 울진원전을 시발로 각 원전의 임시 보관소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어서 제대로 된 폐기장 건설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 사용 후 연료는 연간 480여t씩 나오고 있고, 작년 6월말 현재 4천100여t이 임시 저장돼 있다. 2016년엔 현재의 저장시설에 더 이상 여지가 없어질 전망.
우리나라에는 1978년 부산 고리원전 1호기를 시발로 울진.월성.영광 등 4곳에 이미 16기나 되는 원전이 가동 중일 뿐 아니라, 울진.월성에 5, 6호기가 각각 건설되고 있고 2015년까지는 울진에 또 4기가 증설될 예정. 따라서 가동 원전이 총 22기나 되면 핵폐기물 배출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 핵폐기물은 대체로 두 가지 방법으로 보관된다. 부지 여건에 따라 땅 위 또는 땅을 얕게 파서 만든 콘크리트 구조물 내에 보관하는 천층 처분법, 땅 속 암반에 동굴을 만들어 보관하는 동굴 처분법 등이 그것이다.
◇외국의 경우=원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유럽에서도 주민 반발로 원전은 늘 말썽을 빚고, 핵폐기장 건설 역시 좌절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유럽 국가들은 신뢰성 쌓기로 돌파했다. 지질조사 때부터 주민들을 참여시키고 운영 실태도 공개하는 등 철저한 공개주의를 채택한 것. 천층 처분 방식의 핵폐기장 중 대표적 사례인 프랑스 로브 처분장은 지난 1천년간 지진의 흔적이나 기록이 없을 정도로 안정된 곳이지만, 처분장이 들어선 후에는 엄청난 횟수의 시료채취 분석 등 철저한 대응으로 주민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세계 유일하게 동굴 처분법을 채택한 스웨덴 포스마크 처분방은 1986년엔 모니터 활동 중 체르노빌 원전의 이상 징후를 세계 최초로 집어 내 기술로써 주민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서는 발틱해 60m 해저에 1.2km의 터널을 뚫어 만들었다.일본 아오모리현 로카쇼촌 처분장도 공개와 주민 참여로 이룩한 성과로 꼽힌다. 처음엔 반대가 극심했으나 300여회에 걸친 설명회.간담회 등을 통해 주민 동의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 현재 52개 원전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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