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길 옆

주막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여기

대대로 슬픈 路程(노정)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威儀(위의) 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

-김용호 '주막에서'

인생을 길에 비유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의 한 전형이다. 이승에서의 삶을 여정 중의 주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생에서 후생으로 이어지는 중에 잠시 머물다가는 이생,

주막에서 이 빠진 낡은 사발에 입술을 대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가 살았던 그 삶을 고스란히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삶에서 문득 아버지의 인생을 느끼는 것도 그러하다. 이태백은 술 마시는 자의 이름만 청사에 길이 남는다고 한 바 있지만 인생을 주막에 비유한 시인의 상상력이 통쾌하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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