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고3생들은 스스로를 '불쌍한 83들'이라고 부른다. 1983년에 태어난 죄로 2002학년도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 불운을 짊어졌다는 자조다.
이들의 불운은 중3이던 1998년에 싹텄다. 교육부가 "2002학년도에는 특기.소질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제시하고 나섰던 것. 그 후 학생들 사이에서는 "시험 없이 대학 간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고교에 입학한 뒤 그들은 공부를 소홀히 했다. 일주일에 2, 3시간 볼링이나 수영.바둑 등 특기.적성 교육이 실시됐다. 오후 5시면 하교했다. 고1 때부터 학력이 훨씬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지만 교육부나 학생들이나 별로 걱정을 않았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그들의 불행이 확인됐다. 지난해 말에 교육부가 종전과 별차 없는 2002년 대입제도 시행 계획을 내놓은 것. 수능에 등급제를 도입한 것이 다른 점이었지만 수능 비중이 큰 것은 마찬가지였다. 2년 동안 특기.적성을 개발(?)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던 학생들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학력이 떨어진 고3생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재수생 강세. 실제 모의 수능시험에서 재수생들은 재학생보다 평균 20~40점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수생들이 대거 지원할 정시모집에서는 고3들이 상당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
하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대구 교육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전국 모든 고교들이 손 놓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서울지역 상당수 고교는 교육부의 초기 발표에 숨어 있는 문제점을 진작에 파악하고 학생들에게 학업을 독려했다. 대구 같이 눈이 어두운 지역에서나 손 놓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구에서도 몇몇 고교는 '83들'이 고교에 입학한 지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아 심각한 학력 저하를 눈치채고 자체 평가를 치르기까지 했다. 교육부 발표에 들떠 있던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학교측은 억지로라도 공부를 시켰다. 한 교사의 말. "왜 우리만 못살게 구느냐는 학생들의 불평을 수도 없이 들어 왔지만 고3이 되고 나서는 쑥 들어갔다. 올 가을 입시 결과는 좋을 것이다".
올 들어 수성구 몇몇 고교와 여타 지역 2, 3개 고교는 연초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작년 입시에서 수능시험의 변별력이 떨어져 대학들이 심층면접.논술 등에 의존한 것에 주목, 각기 심층면접에 대비한 진학지도, 수업방법, 교재 등을 연구했고 정보를 교환한 것이다.
그렇지만 교육청은 역시 뒷짐을 졌다. 상당수 고교들은 대학들의 발표나 1학기 수시모집을 지켜본 뒤에야 허둥댔다.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과 홍보 탓도 있지만, 현 고3들의 황당한 상황에는 별다른 분석이나 비판 없이 그걸 받아들인 시교육청과 학교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고교 교육을 좌우하는 것은 물론 초.중학교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대입제도는 최근 수명이 5년 미만이다. 1995년에 발표됐던 97학년도 제도는 지난해로 효력이 마감됐다. 1998년 발표된 2002학년도 제도 역시 3년만에 생명을 잃었다.
대입제도가 오락가락 할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이 현장 교육 당국의 냉엄한 분석과 비판이다. 중앙정부만 원망하고 있다가는 피해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덮씌워지기 때문. 그러나 교육청과 학교가 힘만 모은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서울이나 대구 일부 고교의 독자적 사례가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구에서도 2005학년도 입시제도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지금쯤 일찌감치 시작돼야 할 상황이다. 일신학원 윤일현 진학지도 실장은 "고2부터 선택 교과가 도입되는 7차 교육과정의 전개 상황, 2단계 수능 체제, 대학 자율 선발을 골자로 하는 교육부 방안 등을 치밀하게 예측.검토하면 향후 대구 중.고교 교육의 방향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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