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내에서 25병상을 갖춘 ㄷ연합외과 이모(40) 원장. 이 원장은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평범한 동네의원 원장이었다. 일반외과 전문의 자격이 있지만 수술은 하지 않고 감기환자, 복통 환자 등을 진료하는 일반 의사였다. 그러나 이 원장은 의약분업 시작 직전 대학병원 후배 의사 2명과 함께 대장.항문 수술 전문 클리닉을 열었다. 수술장비와 수술실, 입원실을 갖추는데 모두 10억원이 들었다. 이 원장은 "의약분업 이후 외과 개원의들 사이에 대장.항문 전문클리닉 개설 붐이 일면서 1년동안 10여곳 이상이 개원했다"고 전했다.
◇무너진 의료전달 체계
의약분업이후 동네의원들이 최첨단 의료장비로 중무장하고 있다. 너나 할 것없이 대학병원에서나 볼 수 있던 고가의 의료장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안과의 경우 수억원을 호가하는 근시 수술장비는 물론 백내장 수술 등 안과 수술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장비를 갖춘 동네의원이 대구시내에만 10여곳이 넘는다.
장비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안과 뿐이 아니다.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 거의 전 진료과에서 장비도입경쟁이 불붙었다. 개원의들은 "의약분업으로 약값 마진이 사라지면서 동네의원도 수술을 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 수술 장비도입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동네의원이 수술 중심의 전문 클리닉으로 바뀌면서 과거 중소의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동네의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중소병원이 역할을 상실하면서 동네의원 중소병원 대학병원으로 이어지던 의료전달 체계가 동네의원 대학병원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란 지적이다. 수십억원을 투자한 동네의원은 생존을 위해 각종 검사와 수술 등 과잉진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것은 국민 의료비부담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의료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공급과잉
의료계에서는 동네의원의 의료장비경쟁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의사의 공급과잉을 꼽는다. 의약분업은 장비경쟁을 촉발한 뇌관이었다는 것이다.
1980년 우리나라의 의사는 2만2천5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0년후인 1990년 4만2천500여명으로 거의 2배 가까이 늘었으며, 1995년 5만7천여명, 2000년 현재 7만900여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매년 3천여명 안팎의 의사가 배출됨에 따라 2005년에는 8만3천여명, 2010년 9만6천여명, 2015년 11만명, 2020년에는 12만3천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인구 1만명당 의사수도 2000년 현재 13.3명에서 2005년 15.3명, 2010년 17.2명, 2015년 19.1명, 2020년 20.6명으로 추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소득에 비해 의사수가 많은 것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북대 의대 송정흡 교수(의료관리학)는 "의료는 다른 소비재와 달리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며 "과잉 배출된 의사들은 생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의료수요를 만들어 나갈 것이고 국민의 의료비부담은 비례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지금 당장 의과대학생 수를 줄여도 그 효과는 11년 뒤에나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축소 정책은 이미 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의료공급 억제해야
현재 국내의료수준은 너무 고급화되고 있고, 낭비적 요소가 많다. 따라서 의사인력, 국민소득, 의료관행 등 주변 여건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장기적인 의료정책의 마련이 시급하다.
고가의 의료장비 도입은 허가제로 바꿔 병.의원 간 중복투자를 엄격히 통제하고, 장비를 인근 지역 병원끼리 공동 사용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확립도 의료비 억제를 위한 중요한 과제다. 1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은 꼭 입원을 필요로 하는 환자만 병원에 이송시키고, 병원은 외래진료를 하지 않고 입원 수술만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은 본래의 직분인 교육.연구업무에 주력해야만 장기적 측면에서 의료비가 감소하고 의료분야에서 국제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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