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산산수수

성철 스님이 살아계실 때 어느 해였던가. 신년법어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제목의 글이 일간 신문에 실렸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최고 선승이 하신 말씀이 너무나 평범하여서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대학 재학시절 교양학부 철학 강의시간에 '백말은 말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듣고 필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근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하면 말도 말이 아닌데 하물며 백말이 어떻게 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와 같이 산도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닌 것이다.

노자도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도가 도면 비상도요, 명이 명이면 비상명이라고.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 그 자체가 아니요, 사물에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이미 사물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하늘이 아니요, 땅은 땅이 아니며 산천초목은 산천초목이 아닌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 아니요, 너는 너가 아니며 나는 내가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렵다' 고 했다.

나는 항상 내가 무엇인가를 자나 깨나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는데 우산을 받쳐들고 걷다가 뜻밖의 체험을 하였다. 이 지구는 물론 이 우주가 내 몸 속으로 빨려 들어오더니 나의 몸이 화산처럼 폭발하여 산산히 흩어졌다. 그 순간 나는 미친 듯 부르짖었다. 나는 내가 아니요, 이 우주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없어졌으니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모든 지식을 바로잡아 새로운 지식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을 고쳐서 새로운 명칭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누가 나를 알아줄 것인가. 모든 것이 아니듯 산은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지만 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 나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국식물병리학회 회장.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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