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루과이 라운드 10년-우리농업 어디로 가고 있나

◈(7)농사지을 사람이 없다◈희망이 없다 농업후계자마저 농촌 떠나

"장래가 없으니 누가 농사를 지으려 하겠습니까?" 남들이 다 싫다 하는 농사일을 물려주려고 큰 아들 진욱(22)씨를 한국농업전문학교(농촌진흥청)에 진학시킨 정상수(51)씨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 자신이 농업후계자 1세대이고 선산에서 1만평이나 되는 농사를 짓고 있지만 앞날에까지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1981년 정부가 처음 농어업 후계자 제도를 도입할 때 후계자로 선정됐던 정씨는 1985년부터 92년 말까지 농업경영인 연합회 중앙회장까지 맡았었다. 후배인 한농 장철수 경북연합회장은 정씨의 활동은 매우 의욕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씨는 "국가가 농촌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섭섭해 했다.

아들도 걱정되는 듯했다. "40~50명 되는 고향 친구들 중 농사 지으려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이 토지를 많이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려 애쓰고 있었다. "저는 지켜낼 겁니다". 지난달 25일부터는 구미시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기술 연수도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경주 서면 사라리에서 1만3천여평의 논농사를 짓는 후계자 이병식씨. 43살이지만 160여호 동네 사람 중 제일 젊은 축에 든다고 했다. 농사 짓는 후배들이 없는 것이 허전하다는 표정. 그래서인지, 아들에게는 농사를 물려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경산 남산면 전지리 포도 하우스 단지 김진수(52)씨의 수입은 상당했다. 물려받은 2천평 포도밭 농사를 1975년에 시작해 6천평으로 늘려 놨다. 하우스 포도 농사도 12년째. 매년 1억원을 옷도는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가 포도 농사 못잖게 마음 쓰는 것은 젊은 후배들을 키우는 일이었다. 김씨네 마을의 '젊은이'는 하나같이 '마흔 넘은 젊은이'. 농사에 뜻있는 젊은이가 그리웠던 김씨는 마침 자신의 집에 머물며 포도 기술을 배우려는 '진짜 젊은이' 둘이 찾아 오자 지난 1월부터 이들에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농촌진흥청 부설 한국농업전문학교 현장지도 교수를 맡았기 때문.

내년 졸업한 뒤 고향인 전북 장수로 돌아가 김씨처럼 '성공한 포도농'이 될 꿈을 가진 그 학교 과수과 2년 오정석(27)씨는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싫어 한다지만 사람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느냐?"며, 자신은 꼭 고향 머루밭에서 포도농사로 성공하겠다고 했다. 부모가 천안에서 포도농사를 한다는 민철기(21)씨도 "좋은 기술을 많이 배워 가겠다"고 했다.

김씨는 이들에게 숙식.용돈을 제공해 가며 벌써 7개월째 노하우를 전수 중이었다. 그러나 역시 하나뿐인 아들(13.초교6년)에게 대를 잇도록 할 결심은 선뜻 서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농촌이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뭐니뭐니 해도 사람, 특히 젊은이가 없다는 것. 경북지역의 이 문제를 담당하는 경북도 농업기술원 배창원 인력육성 담당은 "농촌인력 육성이 갈수록 어렵다"고 했다. 현재 농촌인구 분포는 3명 중 1명꼴로 60대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어쩌면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자료도 이미 제시돼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말 전국 농업인 2천100명을 대상으로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980명)의 3.5%(34명)만이 자녀들에게 농업을 권하겠다고 했다. 지금 활동 중인 농업인 숫자의 97%만큼은 머잖아 또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올해는 농업후계자 지정 육성 제도 도입 만 10년. 그러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가가 선정하는 '후계자' 수도 갈수록 줄고 있다. 경북도내에선 1981년부터 작년까지 지정 지원된 후계자가 총 1만9천294명(전국 11만4천524명). 그러나 연도별 지정자 숫자는 1995년 1천717명을 최고로 매년 감소, 작년엔 987명에 불과했다. 올해는 690명쯤으로 더 적어질 전망.

게다가 중간 탈락자도 속출, 경북에선 2천549명(전국에선 1999년까지 1만8천341명)이 전업.이사 등으로 후계자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들에게 지원됐던 254억6천600만원이 회수되거나 미수로 남아 있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다르게 설명한다. 농림부 농촌인력과 김영만씨는 "후계자 숫자가 많이 감소한 것은 부실을 막기 위해 관리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정으로 농촌에 남으려는 후계자들을 보다 실질적으로 지원하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 탓이라는 것.

어쨌든 농촌에 머물게 하려고 여러가지 정책을 동원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정착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후계자는 산업기능 요원으로 포함시켜 군 복무를 않아도 되게 병역법까지 고쳤었다. 그렇지만 경북농업기술원 이경호 지도기획 과장은 "이제 일부 지역에서는 후계자 지정 대상조차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영천 신녕면 김용규 농민상담 소장은 "후계자 제도의 성과는 있었지만 후속 조치 부실과 열악한 생활환경 등 탓으로 젊은이들이 농촌을 등지는 것 같다"고 했다. 농업계 학생 숫자가 1998년 3만2천678명(경북 1천958명)에서 작년 2만6천877명(경북 1천632명)으로 준 것에서도 그런 설명은 타당해 보였다.

국가의 농업인 육성 정책에 대한 비판도 없잖다. △육성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사후관리나 후속지원이 미약하며 △농촌 생활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농가소득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등이 그것. 1983년 후계자로 지정됐고 지금은 둘째 아들(24)에게 농업을 권하고 있다는 무을농협(구미) 백용철(49) 조합장은 "국가가 후계자 관리에 신경을 더 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지정한 뒤 돈 3천만원 지원하고는 모든 걸 잊어 버린다는 얘기였다.

이런 가운데 농업 인력 육성 및 기술 지도를 맡은 경북농업기술원 및 시.군 기술센터 인력고 급감, 1990년 1천290명에서 작년에는 773명으로 감축됐다. 이들은 1997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된 뒤 각종 체납세 징수와 단속 업무에까지 동원돼, 본업무를 제쳐 놔야 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경북 농업기술원 전한식 기술보급 국장은 "지도직 공무원들이 지자체 단체장의 지휘를 받느라 각종 허드렛일에 시달리고 있어 농촌인력 지도 육성에 상당한 지장을 받을 정도"라고 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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