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날, 대구시 남구 여성단체와 남구청, 대구 봉덕초등학교가 공동 주최한 '1일 주부 체험의 날' 행사가 남구 봉덕동의 300여 가정에서 열렸다. 올해 6회째인 '여성주간'(1~7일)을 맞아 처음 열린 이 행사는 참가 가정의 주부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을 비운 사이 다른 가족들이 주부 역할을 대신해보게 함으로써 아내와 어머니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취지.
대구시 남구 봉덕 2동의 아버지 김시경(41)씨와 큰딸 지민(봉덕초등 6)양의 '아내와 엄마 없는 하루'를 살짝 엿보았다.
미리미리 챙겨놓고 집을 비웠지만 주부가 없는 집은 금세 엉망으로 변하고 만다. 초등학교 3학년인 재민이와 7살짜리 재훈은 종일 시끄럽기 짝이 없다. 참다 못한 아버지가 "애들아 그만"하고 타일러 보지만 소용없는 일. 아이들은 아버지의 경고를 도무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엄마의 "조요옹∼!" 한 마디면 뚝 입을 다물던 아이들이 통제 불능상태에 빠진 것이다. 핵가족화와 더불어 가정의 주도권이 아버지에서 어머니에게로 이양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내가 없는 집, 단 하루지만 아버지 김씨는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다. 집안을 완전히 장악하고 챙기던 아내가 없으니 걱정이 되는 모양. 지난 13년간 아홉 식구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했던 아내의 무게가 새삼 묵직하게 느껴지는 날인 셈이다. 대식구의 식사와 청소도 문제지만 한창 개구쟁이인 아이들이 가장 큰 골칫거리. 내버려두자니 엉망이고 잔소리를 하자니 어떻게, 얼마나 해야할 지 알 수가 없다.가장 신이 난 사람은 큰딸 지민이. 평소 엄마의 그늘에 가려졌던 요리솜씨를 마음껏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손을 좀 빌리기는 했지만 혼자서 피자를 만들었다. 재료 배합이 힘들긴했지만 동생들의 신기해하는 모습에 지민이는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게다가 식구들이 모두 맛있다고 칭찬하는 바람에 어깨까지 으쓱해진다.
엄마의 외출과 더불어 아이들이 얻은 공통의 행복은 한가지. '지겨운 잔소리'가 엄마와 함께 외출해버렸다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텔레비전 그만 봐라', '공부해라', '컴퓨터 오락하지 마라'…끝없는 엄마의 잔소리에 시달렸던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다.
지민이는 엄마가 그토록 자주 잔소리를 해대던 이유를 오늘에서야 조금 깨닫는다. 동생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소리치거나 위험한 짓을 저지른다. 녀석들은 비가 내리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마구 나돌아다닌다. 엄마의 잔소리는 결국 사랑이었나 보다. 지민이는 엄마가 집을 비운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잔소리꾼으로 변해가고 있다.
해도 해도 표시나지 않는 집안일, 그러나 주부가 없는 집 안팎은 금세 '주부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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