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 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우리민요'

(27)-메김소리에 '상사듸야'로 받는 논매기 소리

모내기를 끝내고 보리타작을 하고 나면 그 사이 모가 제법 자라서 벌써 논매기 철이 닥친다. 보리와 벼의 일철은 서로 다르지만 보리베기에서 모내기, 보리타작, 논매기는 서로 엇갈려서 이어진다. 가을에 벼베기를 하면 그 논에 다시 보리를 가는 작업을 해야 하니, 보리와 벼를 번갈아 베고 심고 매고 하는 작업이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셈이다.

세상일도 농사일처럼 이렇게 맞물려서 돌아간다. 서로 맞물려 벌어지는 일 가운데 가장 민감한 일이 남녀간의 사랑이다. 달리 말하면 '상사(相思)'이다. 서로의 간절한 사랑, 사무친 사랑, 지독한 사랑을 두고 '상사 났다'고 한다. 상사병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논매기 소리는 곧 상사소리라고도 한다.

얼럴럴 상사디야

얼럴럴 상사디야

여보시오 농부들아

요내 말쌈을 들어보소

이 농사가 뉘 농사요

우리 국민 사자 하네

이 농사를 지어 놓고

우리 백성 먹구 살어

논매기 소리는 으레 '상사소리'라고 할 정도로 '얼럴럴 상사디야' 하고 뒷소리를 받기 일쑤이나, 지역에 따라서 뒷소리가 아주 다양하다. 논매기할 때 부른다는 소리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으면 마치 제각기 다른 노래처럼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소리꾼이 메기고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 메김소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이러한 다양성의 가능성은 일의 동작과 노래의 가락이 유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호미를 쥐고 풀을 뽑는 손동작이 노래의 사설이나 가락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따라서 '여보시오 농부님들 요내 말씀 들어보소' 하는 들머리 노래말처럼, 논매기를 하면서 무슨 소리든 다 부를 수 있다. 온갖 사설을 다 끌어와서 부를 수 있으니 이내 소리 들어보라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소리든 농사일이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 바로 농사일이기 때문이다.

큰 덩어린 잘 부시고

베 포기에 풀을 잘 뽑고

이내는 기다리질 못하리

우리 일군이 잘 뽑어주세

논매기는 호미로 논바닥을 파 엎으면서 잡초를 뽑고 논흙도 부드럽게 일구어 줌으로써 벼가 잘 자라도록 하는 일이다. 논매기 소리는 다른 일노래와 달리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대목이 거의 없다. 전체적인 진행상황만 알려주고 일의 시작과 마무리를 구별해 주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에는 논바닥의 흙덩어리는 잘 부수고 벼포기에 붙어 있는 풀도 잘 뽑으라고 한다.

그러나 칠팔월 복더위에 칼날 같은 벼는 얼굴을 찌르고 손발은 뻘 속에 부풀어 있으며, 삼베 잠방이는 땀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삼베 등어리에는 쇠파리가 달라붙고 다리에는 거머리가 피를 빤다. 머슴들은 쇠파리를 쫓고 통풍을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등과 팔에 끼워서 일을 한다. 어지간한 사랑이 아니면 못할 일이다. 지독한 농사 사랑이다.

상사허시는 우리 동관

상사 부사는 동지스라

상사났네 상사로다

이십 살 먹은 노처녀가

시집을 못 가서 상사로다

이십 살 먹은 노총각이

장가를 못 가 상사로다

받는 소리도 조금씩 다르다. 여기서는 "리일릴릴 상사두야"라 했는데, '상사'라는 말을 다각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흔히 알고 있는 '상사'와 전혀 다른 뜻인 동음이의어 '상사(上使)'를 끌어들여 '부사(副使)'와 '동지사(冬至使)'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조선왕조가 동지 무렵에 중국으로 보낸 사신이 동지사이다. '상사하시는 우리 동관'이란 구절은 같은 관청에 다니는 동급의 관리가 동지사의 '상사'가 되어 중국에 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요즘 같으면 미국으로 가는 외교사절의 정부대표가 바로 동관(同官)에서 났으므로 '상사났다'고 좋아하는 것이다. 이때 '상사'는 동지사의 정사(正使)란 뜻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좋은 일 곧 상사(祥事)란 뜻이기도 하다. 노처녀와 노총각 '상사'도 뻔하다. 시집장가를 못 가서 '상사(相思)'가 났으니 시집장가를 가야 상사(祥事)가 난다.

한톨 종자 싹이 나서/ 만곱쟁이 열매 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에 조화로다

비바람을 무릅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 흘르게 일을 삼으니/ 농사발전 시켜보세

한 톨의 씨앗을 심어서 만 갑절이나 되는 많은 열매를 맺는 농사일이 참으로 신기한데, 그것이 모두 하늘과 땅의 조화요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 농부로서 자부심을 느낄 뿐 아니라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추상적인 관용어보다 농업이야말로 자원고갈이나 환경훼손 없이 지속 가능한 생명산업이라는 가치를 자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농요를 부르는 일이 논매기의 고됨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은 물론, 농사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계기를 통해 신명을 올려 모내기를 하는데 큰 부추김이 되었을 터이다.

사람마다 벼실하면/ 농부 될 자 또 있느냐

의사마다 병 고치면/ 북망상천 왜 생겼나

농사일의 중요성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강조되어도 논매기를 직접 하는 사람의 처지는 다르다. 땡볕과 땀, 뻘, 쇠파리, 거머리 속에서 악전고투해야 한다. 요즘 같으면 3D에 속하고도 남음이 있으므로, 딱한 현실을 순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논매기를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노래는 농사일의 가치와 함께 농부의 역할을 순조롭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구실도 한다. 사람이 나서 죽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농사일도 누군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힘든 농사일을 자연의 이치이자 사회적 의무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힘을 지녔다.

칙량기술을 다녔는지/ 뻘대 하나가 웬말이냐

머슴살이를 다녔는지/ 목다리 한짝이 웬말이냐

옹기장사를 다녔느냐/ 질투가리 한나가 웬말이냐

측량할 때 기준점을 잡기 위해 쓰는 긴 막대를 흔히 일본식 용어로 '뽈대'라고 한다. 폴(pole)에서 비롯된 말이다. 측량기사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으레 이 막대를 들고 다녀야 한다. 머슴살이 한 사람은 바닥이 없는 버선 '목다리'가, 옹기장사는 집구석에 으레 질그릇 뚝배기가 굴러다니게 마련이다. 자기가 한 일에 따라 흔적이 남는다는 말이다.

'과수원에나 다녔느냐/ 사과 상자가 웬 말이냐'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반드시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이회창 총재의 주장을 두고 메기는 앞소리이다. 닷새가 멀다 하고 곰배님배 답방을 요구하는 대통령의 조급함도 문제지만, 기어코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하는 이총재의 어긋장도 문제다.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겠다는 장터인심의 야박한 상호주의와 함께, 민족통일 문제를 세계적인 냉전구조의 해소와, 거시적으로 전개되는 민족사의 큰 흐름 속에서 포착하지 못하고 기껏 감정다툼 수준의 사과 문제에 매몰된 탓이다.

과거사에 관해 사과 받기로 말하면 이 총재 자신도 만만찮다. 두 아들 병역문제에서부터 최근의 사립학교법 개정반대에 이르기까지 사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당장 전교조가 사립학교법 개정반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 않는가. 거기에 '상사듸야' 할 이들이 적지 않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