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이 되어 만나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 시 가운데 절창으로 알려진 시이다. 그러나 어려운 시이다. 시의 리듬도 좋고 풍기는 예술적 아우라(분위기)도 뭔가 허무적 실존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가뭄을 현대사회의 비인간과 소외 정도로 생각해보자. 물은 원초적 생명의 이미지이다. 물은 죽은 나무뿌리를 적셔 생명을 부여하기도 하고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기도 한다. 나도 문학 소년이었을 때 이 시를 무작정 좋아 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때 나는 열일곱 살의 저 혼자 흐르는 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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