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바늘 할머니'의 초심으로

옛날 어느 선비가 길을 가다 호호 할머니가 쇠뭉치를 갈고 있길래 무얼하느냐고 물었더니 바늘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하더란다. 그렇다. 내 죽은 후라도 후손들에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을 남기고 싶은 일념으로 쇠뭉치를 갖고 있는 이 할머니의 인간 사랑이야말로 번창한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오늘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것도 결국 인류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좋은 정치(善政)란 국민을 원수로 삼아 증오하고 채찍질하는 갈등의 정치가 아니라 이 백성 가슴마다에 꿈과 희망이 열리는 사과나무를 심어주는 그런 화해의 정치, 사랑의 정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언론 세무조사의 타당성에 납득은 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언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생(相生)의 정치를 거부하고 외통수로 정국을 몰아가는 그 저돌성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지금이 언론 개혁 할때인가

사실 우리는 언론사라 해서 탈세와 불공정 거래를 밥먹듯 해도 된다고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치로 따지자면 또박또박 갑근세를 내는 우리로서는 막강한 아성에 군림하며 세금을 떼먹고도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자신의 비리를 호도하러 드는 그런 파렴치한 언론이 있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있을리 없다. 그럼에도 집권측의 언론 세무조사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 무엇보다 그동안 쌓인 개혁 피로감때문이 아닐까.

사실 현 정부 집권이래 교육개혁, 의료개혁, 경제개혁에다 정치개혁까지 잇달았지만 어느것 하나 제대로 매듭을 지은 것 없이 유야무야로 그만이더니 이번엔 또 언론개혁이라며 들쑤시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보기에 좀 뭣한 것이다. 순리로 따지자면 정치개혁부터 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은 연후였더라면 언론개혁의 말발도 좀 더 섰으련만 자기네들은 돈세탁방지법 하나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한 터수에 언론개혁을 또 몰아붙이니 "나는 바담 풍(風)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는 격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여야가 격돌하고 신문과 방송이 갈등하는 가운데 전 국민이 홍역을 치르며 국론분열의 조짐마저 보이니 "이런 개혁이라면…"하고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된다. 지금같이 어려운 국난기엔 국론을 한데 묶어 결집시켜도 시원찮을 판인데 오히려 거꾸로 흐르고 있으니 문제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불과 임기가 2년도 채 안남은 현 정권이 새삼스레 언론과 버거운 전면전을 선포, 외통수로 몰아가는 그 저의가 무엇인지 그게 불안하고 궁금한거다. 정치9단인 DJ라면 정치적 손익을 따지는데는 이미 도를 통한 경지다. 그런 정치 달인이 바야흐로 정치적인 손익 계산을 끝내고 "막강 언론을 적으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언론을 개혁해야되겠다"고 작심(作心)케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무대포식 개혁 국민 불안만 가중

혹시 언론 탈세로 발목을 잡은 이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궁극적으로 '신문없는'정부를 만들려고…? 그럴리 만무라 믿으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불안한 것이다. 사실 이 땅의 신문은 그동안 경향신문 폐간, 동아일보 광고사태, 언론통폐합 등 물리적인 제재는 받았을지언정 권위는 손상되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세금을 떼먹은 죄인으로 몰려 권위 자체를 손상당한데다 조선.동아 등 소위 빅3의 경우 각각 850억원 전후의 추징금까지 두들겨 맞는 만신창이의 꼴이 돼 버린 것이다. 다시말해 입법, 사법, 행정에 대한 견제 기능으로 제4부(府)로까지 불리던 언론이 막다른 골목에서 국정을 비판할 권위도 기력도 잃은채 좌초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물론 고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번 언론세무조사는 정부발표대로 조세정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는지는 몰라도 한편으론 무(無)신문 무(無)비판의 황당한 결과를 초래할 틈새를 만든 것이 못내 아쉽다. 정부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믿는 입장에서조차 선뜻 박수갈채를 보내지 못하고 언론의 처지를 옹호케 되는 연유도 바로 이러다 신문없는 나라가 될까 우려하는 마음에서다.

이미 때 늦은 감이 없지않지만 우리 모두 언론이 새로 태어나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게끔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한다. 우선 여야(與野)의 정치권부터 쇠뭉치로 바늘을 갈았던 그 '바늘'할머니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진정 이나라의 내일을 열어가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했으면 한다. 언론도 깊은 자성이 있어야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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