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 사회 매춘실태-80년대 중반부터 사회 문제화

청소년 성매매를 비롯한 매춘행위가 남한사회에서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북한사회의 매춘실태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에서도 매춘은 존재한다.

북한사회에서 매춘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것은 80년대 중반부터이다.

84년 외국과의 합작사업을 승인한 '합영법' 공포 이후 외국인들의 방북이 늘어나고 유입되는 외래사조의 영향을 받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무렵의 매춘행위는 대부분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일부 특수직종 여성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으며 화대의 기준도 일정치 않았다.

84년부터 87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북한측과 합작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방북했던 한 일본 상사원의 경험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상사원은 "자주 평양을 왕래하면서 친숙해진 호텔여자 바텐더에게 스카프를 선물로 주었더니 옆의 여자 바텐더가 자신에게도 스카프를 주면 방까지 따라가겠다고 밝혀 놀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특수직종 여성들사이에서 화대의 기준조차 없이 은밀히 이루어지던 매춘은 '평양축전' 개최 준비로 사회분위기가 느슨해진 88년 하반기 들어서면서부터 조금 더 확산되기 시작했다.

호텔 또는 외화상점에 근무하는 여성들 뿐 아니라 일부 기혼 및 미혼여성, 심지어는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여대생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미성년자마저 매춘에 가담했으며 매춘상대도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매춘행위는 호텔이나 여관사용이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대부분 매춘여성의 집이나 대동강변 및 모란봉의 숲속이나 '뚝방' 등 인적이 드문곳에서 이루어졌으며 화대는 보통 10달러 내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매춘을 위한 유객행위는 대부분 '외화상점' 등의 입구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는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접근, "물건을 사야겠는데 돈이 모자란다. 돈이 있는가"라고 묻는 수법이 사용됐다고 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북한에서의 매춘은 매춘여성들의 나이에 따라 두가지 형태로 대별된다.

생계를 위한 매춘과 여성으로서 멋과 모양을 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매춘이 그것이다.

생계형 매춘은 대개 30세를 넘어선 과부나 유부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80년대 중반이후 가중되고 있는 식량부족 등이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매춘은 평양 보다는 상대적으로 생활이 더 어려운 지방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촌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해변의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해양경비대원들과 공공연히 일으키는 '부화(간통)사건'은 이의 대표적인 예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모양을 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매춘은 30대보다는 20대 여성들쪽에서, 지방여성보다는 평양여성들에 의해 거의 100%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북한사회에서의 매춘은 대부분 생계 유지를 위한 것인데다 그것도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아직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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