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기능경기 대회가 5일 서울에서 시작됐다. 전국 실업계 고교생들이 모여 갈고닦은 기량을 겨루는 자리. 실업 교육의 모든 성과가 나타나는 자리로 여겨져 중요시돼 온 대회이다. 때문에 참가 선수는 물론 시.도 교육청들도 금메달 하나하나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대구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실업 교육의 문제는 이 대회의 이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한 공고 교사는 "일년에 5천만원인 학과 예산 중 2천만원을 4, 5명의 이 대회 참가 학생을 위해 쓴다"고 했다. 성과에 집착하느라 일반 학생들을 위한 실습비가 뭉치로 떨어져 나가는 것.
실업고 위기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기능인력 양성을 위한 기존의 '완성형 실업계고 교육' 방식이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업계 고교 졸업생에게 돌아 가는 일자리는 저임금 단순직이 대부분이어서 또다른 문제로 부각됐다. 그런 뒤 국가 역시 직업교육의 축을 전문대로 옮겨 버렸다.
현장 상황이 이렇게 된 뒤 학생들은 자의반 타의반 취업보다는 대학 진학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구 경우 작년 봄 실업계고 졸업생 1만7천여명 중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전문대 6천784명을포함해 8천여명에 이르렀다.
실업계고의 위기는 고입 내신제 도입 이후 가속화됐다. 초.중학교에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중학교만 졸업하면 최소 실업계고에는 아무 시험 없이 진학할 수 있도록 상황이 바뀌자 신입생들의실력이 더 떨어졌다는 것. 경북공고 윤종태 교사는 "국어책을 못 읽어도 고교 진학은 할 수 있으니이런 결과야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때문에 실업계고 교사들 중에선 고교 입시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입학 때 학력이 워낙 낮다 보니 실업계 고교들이 아무리 잘 해보려 해도 좀체 먹혀들지 못한다. "3월 입학해 4월쯤 되면 학생들 사이에 세력 싸움이 벌어지고, 5월에는 가출.무단결석이 두드러져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들까지 피해를 입게 되지요". 적잖은 실업계고 1학년들이 겪는 과정이라고 어느 교사는 말했다.
수업시간에 잠 자는 학생도 점차 늘어난다. 게임방에서 밤을 새고 왔기 때문. 상당수 실업계고 학생들이 취미를 붙이는 곳은 게임방.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새벽 2~3시까지 게임방에 있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학생들은 말했다.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생에게 피해도 주지 않으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교사들도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실습 시간이 돼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사립 공업계고에서는 10명씩 실습하고 나머지 30명이 놀아야 할 때가 많다. 기자재가 부족한데다 실험.실습비 지원은 쥐꼬리만하기 때문. 기계과한 교사는 "학생 1인당 실습비가 한달에 5천원 정도밖에 안되지만 대구 시내 직업전문학교 가면 4만~5만원이나 된다"고 허탈해 했다.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 실업계고가 아예 사라지지 않을까 교사들은 우려했다. 고교 1학년까지공통교과를 배우고 고2, 3년 때 선택 교과를 배우도록 돼 있으나, 그렇게 해서는 실업계 교육 자체가 어렵다는 것. 일년 반(3학년 2학기는 현장실습)만에 모든 전문교과와 기술을 다 배우라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라는 한탄도 뒤따랐다.
경북공고 박병석 교사는 "고입 선발 방법부터 바꾸고 대입 제도 역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학교 때 적성검사나 상담 없이 내신성적 대로 줄을 그어 인문.실업고 진학을 가르는 방식은 실업계고 몰락을 가져 올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대입시 때 5% 정도에 불과한 예.체능계 수험생을 위해서는 따로 수능시험을 치르도록 하면서20%에 이르는 실업계 수험생은 방치되고 있는 것 역시 큰 당착이라고 했다. 실업계고 자체의 완성형 교육이 불가능하다면 대학 가는 문이라도 넓혀줘야 학생들이 의욕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당장의 실업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실습비와 기자재 구입비 등 예산지원을 현실화하는 한편, 대안 학급 설치, 전문 상담자 배치 등 분위기 전환 노력도 시급하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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