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월말이면 스위스의 스키도시 다보스는 수만명의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세계적인 정·재계·학계·언론계·문화예술계 등의 지도자들만도 2천명 넘게 찾아온다. 1주일정도의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 포럼)'에 2만달러(2천400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다투어 몰려든다.
시내 60여개 호텔은 이미 1년전부터 외지인들의 예약으로 꽉 차버리고 폭설로 인한 교통두절도 비일비재한다.
악조건 투성이인 이 지방도시에 국제적 유명인사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한가지, 다보스 포럼 때문이다. 세계적 명망가들을 한 자리서 만날 수 있는데다 최고의 석학들이 세상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최신 정보도 제공, 아이디어 창출을 돕고 사교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 '국제사교장'의 메리트는 2만달러의 수업료가 아깝지 않게끔 만든다. 다보스는 WEF 한가지로도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뉴욕이나 파리·런던·도쿄 같은 수퍼 시티들만이 국제도시는 아니다. 지구촌에는 다보스처럼 대도시가 아니면서도 유명한 도시들이 적지 않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
'투우사보다 황소를 사랑하고, 부유하지만 무덥고 추한 광산도시'로 헤밍웨이가 소설 '정오의 죽음'(1930)에서 묘사했던 빌바오는 80년대까지만도 검은 매연의 도시였지만 이후 면모를 일신, 지금은 하이테크 도시,문화예술의 도시로 바뀌었다.
바스크 자치정부가 세계 최고의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빌바오에 유치한 것이 회생의 원동력이 됐다. 1억달러(약1천1백억원)의 건축비 대부분을 바스크 자치정부와 지역단체들이 부담,지난 97년 개관한 '구기'(구겐하임 빌바오의 애칭)는 단숨에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곡선미 넘치는 미술관 건물부터가 현대건축사에 남을만한 걸작이기 때문. '구기'는 매년 1백만명 이상의 지구촌 사람들을 빌바오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고도 볼로냐. 인구 38만명 중 대학생이 10만명,913년된 볼로냐대학이 있는 '대학도시'. 그러나 또 한편 '피에라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의 코엑스격인 '피에라'에서는 연간 65차례의 박람회, 400여회의 국제회의가 열리며 2만3천개가 넘는 전세계 기업들이 부스를 설치한다. 연중 국제적인 이벤트가 끊이질 않는다.
'유럽의 심장'이라 불리는 편리한 교통망과 세계 최고 수준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전세계의 장사꾼과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처럼 작으면서도 국제화된 도시들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도시가 작으면 작은대로, 기반시설이 열악하면 열악한대로 독특한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었다는 점이다. 다보스는 이 시대 최고의 지적 정보와 사교를, 빌바오는 빌바오만의 문화적 향기로, 볼로냐는 풍부한 상업 정보를 내세워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도시들은 지방도시라도 국제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계명대 김철수(도시공학) 교수는 "100만 이상 인구를 가진 도시를 통상 메트로폴리스tropolis: 주요도시.거대도시)라 부르는데 그런점에서 250만 인구의 대구는 이미 메트로폴리스적 요건을 갖춘셈"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지방에 있는 대구의 경우 글로컬라이제이션, 즉 국제화와 지방화의 조화가 바람직한 방향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주 불교문화와 안동 유교문화,가야문화와의 연계나 해외 케이블방송 등을 통한 섬유패션도시의 이미지 메이킹 등이 필요하다는 것.
국제화 도시들의 또다른 특징은 랜드마크(landmark)가 있다는 점. '항해나 여행의 길잡이가 되는 목표'란 뜻의 랜드마크는 도시의 상징물로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파리의 퐁피두센터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 등 널리 알려진 랜드마크 외에도 지난 90년대 이후만도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 도살장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파리의 빌레트공원,도쿄(東京) 공연문화의 메카가 된 도쿄국제포럼 빌딩 등 선진도시들은 경쟁적으로 랜드마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엔 문화도시적 이미지 구축이 그만큼 중요함을 말해준다.
이와함께 21세기 일류도시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도시들은 저마다 액션 프로젝트를 가동,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구의 경우 최근의 인프라 확충과 국제행사 등을 계기로 국제화를 꿈꾸고는 있지만 아직 마스터플랜은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화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를 벤치마킹해봄직하다. 베이징은 몇년전만해도 '더럽고 공기 나쁜 도시'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최근의 베이징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로 거리가 깨끗해졌고 대중교통은 천연가스 차량으로 개조됐으며 각종 문화시설도 눈에띄게 늘고 있다.
또 작년부터는 '10차 5개년(10.5) 계획'을 설정, 향후 50년간의 도시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 1천300억 위안(약 18조2천억원)을 투입, 1단계로 2010년까지 국제도시의 기본틀을 갖추고, 2단계는 2020년까지 현대화 대도시의 면모를 완성하며, 3단계는 금세기 중엽까지 세계 일류수준의 국제도시로 가꾼다는 마스터플랜이다.
상하이 역시 신개발지 푸둥(浦東)의 빠른 발전에 힘입어 급속하게 국제화 돼가고 있다. 30층 이상 건물만도 220개가 넘는 상하이는 도로·인터넷망·항공 등 국제화 인프라를 이미 충분히 구축한 상태이다.
상하이의 일부인 푸둥은 1단계(1991-1995년)에서 250억 위안(약 3조원)을 들여 10대 기초시설을 갖췄고, 2단계(1996-2000년)에선 1천억 위안(약 12조원)을 투입, 항공·정보·항만기지 등 3대 중점기지를 건설했다. 이어 향후 30년간 계속될 3단(2001-2030년)에서는 1·2단계에서 구축한 기반시설 위에 무역과 금융·하이테크산업의 선두주자로서 전면적인 개발을 추진하다는 계획이다.
세계의 변방에서 이제 국제도시의 꿈을 품게된 대구로서는 갈 길이 한참 멀다. 그러나 기죽을 필요는 없다. 미래지향적인 비전 제시와 함께 대구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할 전략창출이 뒷받침된다면 국제도시로의 길이 결코 험로만은 아닐 것이다.
백승대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국가단위 사회구조에서는 대구가 중심역할을 할 수 없었지만 이제 국제화 사회에선 지역적 특성을 살린 세계화 발전 전략을 효과적으로 추진해나간다면 새로운 국제적 위상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경옥기자 siriu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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