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에 컴퓨터와 관련된 질병이 처음 소개됐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40대 이상의 회사원이 많이 걸리는 '테크노 불안증'과 그 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는 '테크노 의존증'이 그 대표적인 증상들이었다. 이 중 앞의 경우는 신경증으로 보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뒤의 경우는 컴퓨터와 관련해 생겨난 새로운 문명병임에 틀림없다. 하루라도 컴퓨터 앞에 앉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불안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일종의 컴퓨터 중독증이다.
▲이즈음은 그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시력 장애·견통·소화불량 등 신체적 장애를 동반하는 VDT증후군이 나타나고, 인터넷 통신이 발달하면서는 이른바 '올빼미 증후군' 중독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PC를 통한 가상공간의 생활에만 탐닉해 생기는 사이버 정신질환과 사이버 자폐증 환자들이 급증하는 추세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사이버 세계, 청소년이 죽어가고 있다'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을까.
▲사이버 세계에 지나치게 침잠하다 보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혼동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이즈음 컴퓨터 게임들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데 게임들의 많은 부분은 대규모 파괴와 대량 살상이다. 이 같은 게임을 매일 즐기는 것이 인성에 좋은 영향을 줄 리 만무하다. 생명 경시를 뇌리에 심고 모방 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얼마 전에는 중학생이 살인 체험을 하고 싶어 동생을 죽이고, 그 공격성이 자신에게 향해져 자살한 중학생도 있지 않았는가.
▲청소년들의 컴퓨터 중독이 가정의 평화를 깨는 등 가족 간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기사가 보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중고생 30%가 사이버 중독에 빠져 있다. 채팅 때 만나자는 요구를 받는 경우도 58.9%에 이르고, 40.9%는 교제를 한 적이 있으며, 7%는 성행위를 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심지어는 자녀와 컴퓨터 사용 문제로 분란이 없는 가정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컴퓨터 사용을 무조건 막으면 PC방 등 외부에서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컴퓨터 사용 시간을 하루 2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규칙적인 일정을 마련해 관심을 돌리게 될 취미생활 만들어 주며, 거실로 옮기거나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부모도 컴퓨터를 배우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아무튼 가정과 학교, 사회 모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청소년들의 컴퓨터 폐해를 막아나가야 할 것이다.(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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