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어느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고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일억사천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을 것이다

제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정숙 '우포늪에서'

인생은 유장한 물의 흐름과 같다. 동양고전에서는 명경처럼 맑게 흐르는 추수(秋水)를 인간 정신이 도달한 최고의 경지로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흐르는 물도 생각이 없이는 한 송이 꽃도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시는 보여 준다. 사유가 있는 삶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구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되레 흐르는 물이 아니라, 고여서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야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다는 깨달음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달든 쓰든 삼킬 수 있는 큰 인생에 대한 경외가 가득한 시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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