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대문명을 찾아서...

(10)우슈말(1)

스페인의 식민도시로 해안선을 끼고 귀족들의 별장지가 형성된 성곽도시 깜뻬체에서 유카탄반도의 중앙 구릉지대에 위치한 우슈말 유적지로 향한 것은 오전 10시 경이었다. 무(無)라는 뜻을 가진 마야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우슈말 유적지는 고전기 후반인 850년에서 925년 사이에 번영한 뿌욱(Punc)양식의 독특한 건축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속은 시멘트.겉은 석회암판 구성

뿌욱양식이란 속은 시멘트와 자갈로 채우고 바깥은 얇은 석회암판으로 덮는 형식인데, 코르벨 아치라고 하는 삼각 홍예문형의 천장, 벽의 윗 부분을 장식으로 둘러 돌출시키는 형식, 현관의 둥근 석주, 건물 정면 위쪽의 석조 모자이크, 풍부한 격자 모양의 의장요소가 특징이다. 대표적인 유적지로 그 규모가 A급의 우슈말과 B, C급에 속하는 카바, 사일, 라브나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우슈말에는 오후 늦게 도착해서 야간 쇼까지 보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져 있는 데다가, 뿌욱양식의 A급과 B·C급의 유적지를 비교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우슈말로 가는 도중에 예정에 없던 카바, 사일, 라브나 유적지를 보기로 한 것이다. 정말 짧은 시간 속에서 만나 본 이들 유적지는 기대했던 것보다 잘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고요하고 정취있는 주위의 풍경에 압도되어 정말 마야문명 유적지를 찾은 느낌이 확연히 드는 곳들이었다. 당초에 생각했던 마야문명은 복잡한 달력, 거대한 의례 중심지와 웅혼한 건축, 신비스런 상형문과 장려한 샤먼적 의식이 행해졌던 화려한 문명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우리의 폐사지(廢寺址)를 연상케 하는 이곳 유적들은 우리에게 색다른 감흥을 준 것이다.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슈말로 향하였다.

◈"3번에 걸쳐 건축된 건물" 뜻

우슈말은 "3번에 걸쳐 건축된 건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1939년 멕시코 정부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다. 그 규모로 보아 마야문명 가운데 대국(大國)의 수도로서 기능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적지의 입구를 들어서자 멀리 피라미드형의 신전이 나타났다. '마법사의 신전'이었다. 실제는 300년동안 5개의 신전을 차례로 완성했다고 하는데, 난쟁이가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설화 때문에 "난쟁이의 신전"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우리 백제 때 미륵사의 조성에 지명법사가 귀신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연못을 메우고 평지를 만들어 사찰을 건립한 '삼국유사' 무왕(武王) 조의 설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원형 모양의 피라미드 구조 위에 세워진 신전은 높이가 35m이고, 앞 쪽이 45。 경사에 121개의 계단으로, 뒤 쪽이 65。 경사에 92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보통 등산을 할 때, 20。 경사를 넘으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엄청난 경사임이 짐작된다.

◈'天界-中界-下界' 우주관 반영

우리 일행이 신전 앞에 도착해 보니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줄이 쳐져 있었다. 보름 전에 이 곳에 올랐던 미국 여자가 실족(失足)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일어난 때문이었다. 이 신전은 신전의 후면에 차끄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비의 신 차끄를 위해서 만든 신전으로 보고 있다.

'마법사의 신전' 옆으로 4동의 독립된 장방형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궁전은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 건물군은 미국의 고고학자 코왈레스키의 연구에 의하면, 마야인의 우주관에 따른 평면배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북쪽 건물은 천상의 13층을 의미하는 13개의 외부 현관을 보유하면서 다른 건물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천계(天界)를 나타내는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상부에는 3곳에 차끄신의 상이 있고, 그 주위를 깃털달린 뱀 형상의 꾸꿀깐신이 둘러싸고 있다. 동쪽 건물에도 위에는 차끄신의 상이 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오른쪽 끝에 자손번식을 기원하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이 있었다 한다. 또 뱀의 비늘을 상징하는 도상(圖像)들과 함께 새벽의 고요를 의미하는 부엉이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 건물은 태양이 떠오르는 중계(中界)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쪽 건물은 7개의 외부 현관을 가지고 있는데, 역시 차끄상이 있고 오른쪽 끝에서 시작된 꾸꿀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건물은 태양이 하계로 내려가는 중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남쪽 건물은 9개의 외부 현관을 가지고 있는데, 하계가 9층으로 되어 있음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이 곳은 마야대학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학과 천문학, 건축학 등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으나, 1562년 스페인 사람 플라이디에고 델란다라는 사제가 마야종교를 없애고 가톨릭을 심기 위해 5천여 점의 관계자료를 모두 불태워 버려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사원' 건물을 나서서 유적지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구기장'으로 향하였다. 규모가 작은 편으로, 구기장이라 명명하고 있지만, 신에게 바칠 희생을 선택하기 위한 의식이 행해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야대학 '분서갱유' 씁쓸

'지배자의 관저'로 불리는 건물 앞에 서니, 가운데 문 위로 왕중왕(王中王)을 의미하는 독수리상 조각이 상부에 새겨져 있다. 군주 차끄가 치세(治世) 중에 지어 그의 행정본부로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물 앞 마당에는 제단이 있고, 머리가 양 쪽으로 달린 재규어상의 차끄몰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쓰러지기는 하였지만 남근석이 위치해 있어, 이들이 자손의 번영을 무척이나 기원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배자의 관저' 뒤편으로 '거북이 신전'이 있다. 당시 마야인들의 평균 수명이 35세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장수를 뜻하는 거북이를 새겨 신전의 상징으로 붙여 놓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뒤로 더 가니 '대피라미드 신전'이 있었다. 신전 위로 오르니 열대림의 녹색으로 덮인 평원이 한 눈에 펼쳐졌다. 저 멀리 '마법사의 신전'이 아름답게 솟아 있고, 뒤로는 다 부서진 폐허에 벽만이 남아 있는 '비둘기 신전'이 서 있다. 차끄신에게 노래 공양을 바치는 일부 대원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비둘기 신전'쪽으로 해서 내려오니 곧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글:김복순(동국대 교수)

사진:최종만(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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