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줌마-수성못 중년부부 데이트 코스로 인기

대구 수성구 지산동의 작은 호수 수성못. 해는 졌지만 한낮의 열기는 그대로다. 지난 4일 오후 8시 어둠이 막 깔리는 못둑 길. 이근호(영남공고 3년)군이 켜놓은 힙합 풍의 음악소리를 신호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이군은 3년째 이곳에서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힙합춤 연습을 하고 있다)

앞만 보고 뛰는 사람, 삐딱빼딱 경보(競步)를 하는 아줌마, 못을 바라보며 가벼운 체조를 시작하는 사람,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젊은 여성. 수성못의 밤은 그렇게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어느새 길게 뻗어 있는 둑길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뛰고 있었다.

그속으로 때론 걷다가 때론 뛰다가하는 중년의 부부들이 적지 않다. 운동인지 산책인지 구분이 안간다. 아무러면 어떠랴. 운동이, 산책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는 그들도 연인이 된다. 손을 잡고 걷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적당한 어둠이 그런 부끄러움을 묻어준다. 손을 맞잡고 2㎞정도 되는 호수 주위를 한,두 바퀴 돌다보면 새록새록 새로운 정이 솟아난다.

언제부터인가 수성못이 중년부부들의 운동·산책 명소로 떠올랐다.

"작년에 비해 부부가 함께 오는 비율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주변 분위기도 훨씬 가족적으로 바뀌었지요".

2년째 밤 운동을 나온다는 이혜경(39·대구시 수성구 파동)씨도 늘 남편과 함께 운동을 하는 '부부 올빼미 운동족'이다. 보통 3바퀴 정도를 돌면서 집에서 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는다. 결혼전의 데이트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다. 하지만 오늘은 남편에게 일이 있어 친구와 함께 나왔다."대구에 살면서 특히 수성못 근처에 산다는 것은 큰 복 중의 하나입니다".

10년 가까이 밤 산책을 나온다는 강병열(56·대구시 수성구 상동)-이성연(46)씨 부부. 이들은 저녁식사 후 약속이나 한 듯이 집을 나선다. 해가 진 후 선선해진 공기 속을 여유롭게 걷는 그 느낌이 좋아 보통 두 바퀴 정도는 걷는다. 못 주변을 걷고 달리며 흘린 땀만큼 사랑을 키우고 돌아간다.

밤 운동을 시작한지 보름 정도 되었다는 문창보(52·대구시 수성구 지산1동)-윤명숙(50)씨 부부는 연인 같다. 가볍게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둘이서 보조를 맞춘다. 주로 서울에 있는 아이들 이야기와 자신들의 건강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러나 굳이 화제가 없어도 괜찮다. 그저 둘이서 말없이 나란히 1시간 이상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늘 처음 남의 이목을 생각않고 손을 잡고 걸었다. "남들 다 그러는데 우리도 손잡아 볼까"하고 남편 문씨가 은근히 제안했던 것.

젊은 부부들은 아예 둑길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한다. 운동복 차림의 다른 젊은 부부 한 쌍은 집에서 아이들이 기다린다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수성못의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것은 작년부터. 수성못은 이제 더 이상 밤늦도록 술 마시던 포장마차 명소가 아니다. 휘황찬란하게 늘어서 있던 포장마차들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술취한 주당들과 아베크족들이 물러나고 대신 '올빼미 운동족'들과 더위를 피하려는 '올빼미 피서족'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7월부터는 인근에 여름철 이동파출소가 설치됐다. 경찰들이 새벽 1시까지 순찰을 돌며 분위기를 지켜준다. 올 여름밤 수성못에 가면 사랑 가득한 호수를 볼 수 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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