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대구 성동초교 5학년 김다래양

세계은행이 '도시 빈민'을 규정하는 기준은'하루 4달러(약 5천원)이하로 사는 사람'이다. 대도시에서 4달러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삶을 영위한다기보다 연명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우리 나라의 도시빈민 숫자는 대략 300만명에서 600만명으로 추정된다. 턱없이 많아 보이지만 누더기 옷과 판잣집, 날벌레가 우글거리는 더러운 하수 시설만이 도시빈민의 상징은 아니다.

대구 성동 초등학교 5학년 김다래. 136㎝에 32㎏, 교실 맨 앞자리에 앉을 만큼 작은 덩치지만 다래는 참 많은 일을 한다.

다래는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나면 재빨리 학교 앞으로 달려가 엄마의 '과자 난전'을 펴놓고 집으로 돌아와 등교 준비를 한다. 매일 아침저녁, 학교 앞 엄마의 '과자 난전'을 펴고 접는 일은 처음부터 다래의 몫이었다. 심한 천식과 기흉, 허리디스크에 시달리는 엄마는 이 작은 난전도 혼자 감당할 수 없다. 그마저 일주일에 3일은 문을 닫아야 한다. 한쪽 폐가 완전히 망가졌고 다른 한쪽도 조금씩 기능을 잃어 가는 엄마에게는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다래의 밥짓는 솜씨는 일품이다. 밥짓기 경력 6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밥을 지었으니 그럴 수밖에. 엄마가 아파서 누운 날엔 김치찌개도 곧잘 끓인다. 다래는 스스로 '맛은 없다'고 엄마를 위로하지만 엄마는 한사코 맛있단다.

학교에서 돌아온 다래는 매일 엄마의 '과자난전'에서 2시간 동안 장사를 한다. 그 동안 엄마는 병원에 다녀온다. 의사선생님은 "엄마는 길을 걷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호흡 곤란으로 쓰러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오면 다래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저녁 식사 준비. 장사를 마친 엄마가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다래가 태어나기 전부터 폐결핵과 기관지 천식을 앓았던 아빠는 산소통에 의지한 채 2년을 버텼지만 작년 12월 끝내 세상을 떠났다. 1통에 1만원 짜리 산소통 매일 2개. 그 동안 저축해 둔 돈을 모두 써버린 엄마에게 아빠의 죽음은 차라리 다행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다래는 1년 중 3개월 이상을 혼자서 산다.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잠들고 혼자서 숙제를 한다. 돌아가신 아빠도 그랬지만 엄마도 매년 3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한 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 다래는 당장 죽어버릴 지 모를 엄마를 홀로 간호한다. 이 작은 소녀에게 홀로 지내는 밤 따위는 두려움 축에 끼지도 못한다.

"혼자 있는 거 겁 안나요. 늘 혼자였는걸요" 수줍음 많은 열두 살 짜리 소녀가 처음 뱉은 말이다.

다래는 이미 병마에 아빠를 잃었다. 이제는 복병처럼 숨어 엄마의 목숨을 노리는 지독한 질병과 가난에 맞서 홀로 싸우거나 쓰러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가난과 질병엔 강한 대물림이 숨어 있음을 우리는 흔히 보게된다.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다래, 훗날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다래가 이 못마땅한 유전을 끊어버릴 수는 없을까. 이 여름, 숨이 컥컥 막히는 것은 오직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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