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구시 교육청과 지역 교육청들은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 제주서 열린 소년체전서 금메달 41개를 포함해 105개의 메달을 따내며 3위에 올랐기 때문. 교육청 관계자들은 대구 초.중학교체육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며 한껏 고양됐다. 메달리스트가 있는 학교마다 축하 플래카드가 정문위로 내걸렸다.
그러나 지난달 대구 초.중학생들은 운동장 체육 수업을 별로 하지 못했다. 찜통 더위에 장마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운동장이 화로가 됐다가, 진창이 됐다가를 반복했기 때문. 날씨에 관계 없이 체육 수업을 할 수 있는 체육관을 갖춘 학교가 손에 꼽을 정도인 대구가 소년체전에서 메달 몇 개 더 땄다고 과연 학교 체육의 위상을 높였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런 현실인 것.
사실 엘리트 체육 중심의 학교 체육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 전부터 계속돼왔지만 지금도학교 현장에서는 '뜨거운 감자'로 여겨질 정도로 논란이 분분하다. 물론 엘리트 체육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체육을 이끌어온 공로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건강과 생활 체육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학교 체육은 그야말로 문제 덩어리다.
초등학교부터 살펴보자. 우선 체육 교과 전담 교사가 거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 학교마다 영어 전담 교사를 가장 먼저 배정하고, 퇴임한 기간제 교사까지 받다 보니 체육과를 맡을 교사는 아예 생각하기 힘들다. 한 학교에 한 명 정도가 고작이고 그나마 교기 육성이다, 관련 업무다 해서 수업에 전념하기 힘든 실정.
자연 체육 수업은 담임 교사 몫으로 돌아간다. 여교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나이 많은 교사도 적잖은 초등학교 사정을 감안하면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의 체육 수업은 기대할 수 없다. 운동장에 나가서 하는 종목이라야 피구, 공차기 등 놀이 수준을 넘지 못한다.
교육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데 엘리트 체육에 쏟는 예산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체육 시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여름과 겨울, 눈.비 오는 날에는 교실에 들어앉고 운동장 수업도 삐걱거리는 뜀틀과 너덜너덜한 매트, 그물 없는 골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오히려 학교 체육을 통해 체육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부실한 체육 수업은 곧 학생들의 체력 약화로 이어진다. 예전에 비해 체격은 커졌는데 체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흔하지만,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강북초교 박대권 교사는 "지난해 5, 6학년을 대상으로 체력 검사를 했는데 학급당 1명 정도가 1급을 받았을 뿐 대부분은 최하인 4, 5등급에 몰렸다"고 했다.
중.고교 사정은 초등학교보다 더 나쁘다. 30학급 이상의 중학교에서 주당 3시간의 체육 수업을 하기에 운동장은 너무나 비좁다. 날씨가 괜찮은 날에는 5, 6개 학급이 몰려나와 자리 다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정상적인 체육 수업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초등학교도 그렇지만 중.고교 체육은 거의 평가를 위한 수업에 가깝다는 게 교사들의 불만이다.한 중학교 교사는 "한 학기에 4개 종목을 평가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교육과정대로 하면 평가만 하다가 끝난다"면서 "수영 자유형은 중학교 1학년 때 6시간 가르치고 평가까지 하라는 식인데 교육과정대로 수업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입시 위주 교육이 뿌리깊이 박혀든 고교 체육 수업은 교사들의 말 그대로 '아나공'이다. 공 몇 개 던져 주고 하고 싶은대로 놀아라는 얘기. 이마저 2, 3학년이 되면 교실 수업으로 옮겨지고, 다시 자율학습으로 바뀌어버린다.
여기에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 학교 체육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2003년부터 중3생의 체육 수업은 주당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들고 고교 2, 3학년은 체육이 선택으로 바뀌는 것.
교사들은 컴퓨터 과다 사용, 학원 수강 등으로 학생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만큼 대구 학교 체육에도 획기적인 체질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엘리트 체육보다 생활 체육을 우선하고, 학교 체육에 대한 투자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 대구 엘리트 체육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만큼 새 교육감이 더 이상 이런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학교 체육 활성화에 적극 나섰으면 하는 기대도 내비쳤다.
성지중 강현구 교사는 "소년체전 3위라는 성적에 고무돼 정책 입안.결정자들이 엘리트 체육은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생각에 빠지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 시설을 꾸준히 늘려가면서, 스포츠센터나 사회체육 지도자 등과 연계해 학생들의 체력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등현재 여건에서 실현가능한 대안부터 모색하고 해결해가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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