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일자무설

석가여래가 오랜 고행 끝에 보리수 밑에서 샛별을 보고 깨달은 후 한동안 자기가 깨달은 바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법하여 깨닫도록 할 것인가 아닌가를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설법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간곡한 요청에 못이겨 결국 설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근기(根氣)에 따라 깨닫는데 도움이 되도록 적절한 말로 설법을 계속하다보니 어느덧 45년이 흘렀고, 법문이 8만4천자가 넘어 소위 팔만대장경을낳게 되었다. 그런데 여래가 열반하실 때 한 글자도 설한 바 없다고 하였으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공자는 여러날 동안 참선하다시피 심사숙고해보아도 아무 것도 얻은 바 없었으므로 성현들이 남겨두고 간 글을 통하여 가르침을 배움으로써 군자가 될 수있다고 하였다. 공자의 이 말은 불교의 선종이 아니라 교종과 같은 편의 길이다. 그러나 노자가 말했듯이 도를 도라고 말하면 도 그 자체와는 멀어지듯이 사물에이름을 붙여 부르면 이미 사물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문자나 언어를 통한 학습으로는 진리의 실체와는 점점 더 멀어져가며,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진리의 나라 영토와는 점점 더 높고 두터운 담이 쌓여진다. 학식으로는 결코 진리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언어 문자를 통해 배우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태교에서부터 평생교육은 물론 죽음이후까지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최고로심오하고 박식한 지식의 소유자라도 깨쳐서 진리의 나라에 든 사람 가운데 가장 우둔한 자의 먼 발치에도 못미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배울뿐만 아니라 깨치도록노력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비록 공자도 막혀서 돌파하지 못하고 돌아온 난관이지만 배워야 한다. 이같은 상황을 심사숙고해보면 석가여래가 한 평생 설법한끝에 열반에 임하여서 자기는 진리를 한 글자도 설하지 못하였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다.

식물병리학자.전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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