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준동하는 언론들

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갖가지 논란과 공방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더니 이젠 어느새 왜곡 교과서 수정을 거부한 일본 정부에 대한 규탄과 분노가 언론에 가득하다.

식구끼리 싸우다가도 외적이 나타나면 단합해서 물리치는 슬기로운 민족성의 발로인가.

어느 여당 정치인의 선언대로 언론과의 전쟁-정부에 비판적인 메이저급 신문과의 전쟁에 총력을 쏟던 집권당, 무리한 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라고 질타하던 야당, 비판적 신문에 맹공을 퍼붓던 공영방송, 덩달아 아우성을 쳐대던 마이너급 친여 신문들, 그리고 시민단체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일본규탄을 외치는 것을 보면 언론사 말석에 앉아있으면서도 참 신기하다는 느낌이 든다.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흐르는 피를 추스르지도 않고 일본 규탄의 한 배를 타는 모습들. 한국 언론의 저력인지 얼룩진 언론역사를 그려오면서 절로 몸에 밴 변신과 포커페이스 능력인지. 국민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수구언론 주구언론

최근 어느 공영방송노보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시평이 화제가 됐다. 이 시평은 세무조사 이후 언론간의 싸움을 "정권과 '배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던 '수구언론'과 '필연적 공생'관계인 '주구언론'그리고 '들러리 언론'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대리전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이 싸움판에 '언론개혁'을 부르짖던 단체들도 합세했고, '주구언론'들의 준동은 '공영의 탈을 쓴 국영'이라는 태생의 한계도 잊은채 흥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언론자기네끼리 웃고 우는 짓거리와 부화뇌동식 여론몰이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피곤해할 따름이다. 국민들의 정보 취득력과 판단력이 언론인보다 낮은 시대가 아닌 것이다. 신문에 대서특필했다고, TV서 목청을 높인다고 무조건 옳소 하고 동의해 주지도 않고 헷갈릴때는 잠시 판단을 유보할 뿐이다.

일본 규탄의 경우도 그렇다. 상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색깔이 서로 다른 진보신문과 보수신문이 있다면 어느 한쪽은 "일본정부가 민간교과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또는 "일본을 이처럼 공격해서 어쩌잔 말이냐. 일본과 전쟁을 하잔 말이냐"고 반론을 펼 법도 한데 신통하게도 그건 아니다. 북한과 일본은 다르다? 물론 국민들이 안다. 일본 규탄도 해야겠고 어차피 한 국면 전환한다면 그동안 위장.과장 보도의 난투극으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피곤하게 만든 죄과부터 해당언론사가 공동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자기 반성과 개혁을 해야한다.

언론 자기반성과 개혁

신문들은 자율적으로 ABC(발행부수공사제도)를 조기 정착시켜 국민 앞에 신문 부수를 정직하게 공개했어야 했다. 부수가 많이 나가면 많이 나가는대로 적게 나가면 적게 나가는대로 알차게 만들고 알뜰하게 꾸려가면 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가 부수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물건을 보이지 않고 가격 흥정하는 식의 오만함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신문 강제 투입을 근절해야 한다. 담배끊기보다 신문끊기가 더 어렵다는 독자들의 누적된 반감이 엉뚱하게도 집권층의 언론개혁론에 힘을 보태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신문이 없다면 결국 권력의 횡포가 국민들에게 바로 날아갈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신문을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 수도 있는 강제 투입은 신문업계의 자충수일 뿐이다. 또 경품 등 선심제공도 없애야 한다. 신문은 경품 줘가며 팔아야할 싸구려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대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독자들과 직접 상관이 있는 이 정도는 신문업계가 자율적으로 합의를 이룩해야 한다.

방송 또한 개혁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공영방송은 집권자의 전리품처럼 오락가락하는 '공영의 탈을 쓴 국영'의 위상을 벗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언론도 국민이 불편해하는것은 스스로 고쳐야 한다. 그 출발선은 언론끼리의 난투극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추악하게 놀다 어물쩍 딴전 피우듯 넘어가서야 개혁을 암만 한들 헛일이다.

국민들은 언론개혁도 알고 세무조사도 알고 신문고시와 무가지까지 알게 됐다. 덤으로 "×같은…""최후의 독재권력"따위의 말은 마구 휘갈길 줄 알아야 잘나가는 정치인으로 평가된다는 사실도 국민들은 알게 됐다.

김재열 편집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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