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함께하는 오후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쉽게 씌어진 시'

육첩방이란 다다미를 여섯 장 깐 일본식 방이다. 시의 화자인 식민지 지식인이 일본에 와 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이런 비극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요즘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로 우리나라를 비롯 동북아 전체가 논란에 빠져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이 부끄러운 시인의 자기성찰처럼 개인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야만은 우리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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