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올곧은 정신을 잇고 그 맥을 쫓아 아우르며 살아가는 전통마을에는 사람의 향기가 배어난다. 박제 된 듯 하지만 끊임없이 스며나는 우리것과 우리의 모습들. 그속에는 사회를 지탱하던 엄격한 규범도, 마냥 주고 받는 아름다운 인간미도 있다.
디지털시대는 이런 모습들이 어색하다. 사람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경직되고 획일화 됐다. 끝없는 숫자놀음에 어느덧 정체성은 허물어지고 나 만이 존재하고 나 만의 자유와 만족을 쫓는, 아심의 볼모로 잡혀있다.
전통마을을 찾은 것은 그런 일그러진 자화상을 떨치고 잃어 버린 우리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서다.
편집자
"지켜야 할 것에 엄격하셨고, 노해야 할 곳에 거침이 없으셨다. 한번 노성을 발하시면 마른 하늘에 벽력이 울렸으며 높지 않은 어깨에도 구름이 넘실거렸다".
영양군 석보면 원리 두들마을 출신작가 이문열씨는 자신의 근작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에서 고향 선조들의 올곧은 기세를 이렇게 적었다.
하지만 이문열은 같은 작품속에서 고향의 전통을 형성했던 뭇 요소들이 이제는 근대화에 밀려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 하며 옛 선조들의 기계가 가득했던 고향으로는 가지 못하리라 했다.
문향 영양의 대표적 전통마을인 두들마을. 영양 초입에서 임금의 명으로 닦아 어도(御道)라 불리는 길을 따라 15분을 가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듬성듬성 고가들이 자리한 이마을에 다다른다.
재령인 석계(石溪)이시명(李時明)선생이 1640년 병자호란을 피해 영해에서 이 곳으로 들어와 개척한 마을로 후손 대대로 벼슬길보다는 학문에 열중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석계선생의 넷째아들 항제(恒霽)이숭일(李崇逸)이 중건한 '석계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91호)은 사랑채와 안채를 나란히 지어 흙담으로 막아 허실감을 메운 뜰집으로 당시 가족들의 엄격했던 가정교육을 엿볼 수 있다.
절벽위 마을 쉼터에는 석계선생의 부인 정부인 안동장씨의 유적비가 있다. 안동장씨는 자애로운 모습과 엄격한 품위로 자식들의 교육을 맡아 줄곧 "과거급제 보다는 성리학의 본질을 몸소 실천하는 공부를 하라"고 주문하며 10남매를 인재로 키워냈다.
이덕택에 한 집안에서 벼슬과 무관하게 자연과 벗삼아 학문에 정진해 사회적 명망을 얻었다는 '칠산림(七山林)'이 나게 했다. 더불어 임금으로 부터 '사불천위(四不遷位)'를 내려받아 대대로 문중의 자랑이 되고 있다.
마을 동편 언덕자락에 서있는 석천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79호)은 마루와 양쪽 방이 하나로 연결돼 석계선생이 후학들을 교육시키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두들마을의 전통적 학풍은 임진왜란과 일본강점 등 국난이 닥쳤을 때 구국신념을 실천하는 학자들이 수도 없이 배출된 사상적 뿌리가 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 상징물인 유우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85호)은 일제 강점기 이 마을 출신 이병각 시인이 오일도, 조지훈, 조세림 등 민족시인들과 함께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항일운동에 나섰던 장소였다.
이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절벽에 항제선생이 새긴 낙기대(樂飢臺)란 글귀에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 했던 선비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이시명 선생의 학풍은 아들인 이현일과 이숭일에 녹아들고 민족시인 이병각(1910∼1941)의 시풍과 현대문학의 거장 이문열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이마을에는 산업화의 물결에 젊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썰물처럼 빠져 나가 100여호나 되던 가옥이 고작 20호로 줄었지만 마을에 남은 노인들이 억세게 전통을 고집하며 대물림하고 있다.
매년 설날이면 귀향한 후손들이 합동세배로 웃어른과 동민들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고 양편으로 갈라 윷놀이와 시조읊기 등으로 선비들의 전통과 학풍을 잇고 있다또 부인네들은 안동장씨가 궁중음식과 양반음식 등 각지방의 특색있는 음식조리법을 써놓은 규곤시의방(飮食之味房)의 맥을 잇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
두들마을은 향수에 목말라 귀향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직호(71)씨는 "어릴적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다가 이제 선조들의 전통과 정신을 후손들에게 다시금 이어줘야 할 책임에 귀향을 서둘렀다"며 마을 한켠에 새로이 집을 짓고 있다.
이문열씨도 지난 5월 이곳에 광산문학연구소를 열고 고향으로의 네번째 귀향을 준비하고 있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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