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28) 슬슬 굴리듯 부르는 두벌논

논매기는 으레 세 차례 정도 한다. 논매기 소리도 아이 논매기에서 두벌논매기, 세벌논매기 소리가 따로 있다. 두벌 논매기는 굳은 땅을 일구어주는 아이 논매기와 달리 일도 수월하고 노래도 다양하다. 세 벌 논매기는 아예 호미를 쓰지도 않고 손으로 땅을 휘젓듯 하고 말기도 한다. 아이논매기를 제대로 하고 두벌논매기도 어지간히 했기 때문에 흙탕물만 일구고 지나가도 상관없다고 한다. 따라서 세벌논매기는 사실상 '무늬만 논매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거꾸로간다. 갈수록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마치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상극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최근의 언론 세무조사 사태를 보면 막가는 집구석처럼 보인다. 슬슬 굴리듯 힘들이지 않고 하는 두벌논매기 소리를 들어보자. 골~골~골았네 뎅이만 슬슬 굴려라

에~아이논 맬 적에 굳은 흙뎅이

이듬매기에 다 물렀구나

에~굴려어 굴려어 굴려주게

이듬매기로 굴려주게

에~ 이 풀 저 풀 다 뽑아다

논뱀이 복판에 박어 주소

여주 사는 이흥철 어른의 이듬매기 소리이다. 두벌 논매기를 이 고장에서는 이듬매기라고 한다. 이미 아이 논을 맬 때 날이 선 논매기용 호미로 땅을깊게 일구어 놓은 터라 논흙이 많이 부드럽다. 굳은 흙덩이나 슬슬 고루어 주면 그만이다. 따라서 받는 소리도 '고올 고올 골었네/ 뎅이만 슬슬 굴려라'고 한다.

어느 때나 중요한 것은 잡풀을 뽑아내는 일이다. 잡풀을 뽑아서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논 밖으로 집어던지는 일이며, 둘은 논바닥에놓고 발로 밟아버리는 일이다. 평야지역처럼 논이 넓은 곳에서는 논둑 가까이 갔을 때 외에는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잡풀을 던질 곳이 없다. 잘못 던지면 남의 논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풀 저 풀을 다 뽑아서 논배미 가운데 박아 달라고 한다. 이 자리를 매일 적에

천석군이 만석군이

백만장자가 굴려가네

한 톨 심어 열 톨 나구

열 톨 심어 백 톨 나니

아홉 열 자 논배미 들어서

삼십 명 농부님네

삼배출 논자리를 돌릴 적에

앞뜰가면 앞노적이

산천초목을 보일뚱말뚱

뒤를 돌면 뒷노적이요

광을 들어가면 백미가 쌓이고

여주의 안승금씨가 불렀다. 두불 논매기까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경우 가을걷이의 풍요는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일이 없어 탈이지 일 있는 사람은 큰 걱정이 없다. 일이 밥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두레꾼들과 더불어 논매기할 터전이 있는 사람은 요즘 같으면 탄탄한 중소기업의중견사원이나 마찬가지이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고 발전적인 미래가 보장된 사람은 힘든 일을 해도 신명이 절로 난다. 두레꾼들도 힘든 논매기 작업을 극복하기 위해 가을걷이의풍요를 먼저 노래한다. 한 톨 심으면 열 톨이 나고 열 톨을 심으면 백 톨이 나는 것이 농업의 생산성이다. 따라서 논배미 한 자리를 맬 때마다 천석군이 되고 만석군이 되는 희망을 노래한다. 벌써 앞뜰에는 앞노적이 앞산처럼 높다랗고 뒷곁에도 뒷노적이 버티고 있다. 미래의 희망이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는 가장 긴요한처방임을 알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그것도 30여 명의 군정들이 같은 논배미에 들어가서 우렁우렁한 소리로 '어~호~ 골았네 뎅이만 슬슬 굴려라' 하고 소리를해가며 일을 하면 사실상 일이랄 것도 없다. 일의 신명과 풍요의 기대가 한데 버무려져 상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품 정승 이완용아

이군불사 못할망정

삼천리강산 이씨토왕

사 백만 전에 도매하야

오적 참에 되더란 말요

안성 사는 한상기 할아버지 소리이다. 농투성이들의 일노래라고 하여 한갓 놀이의 탐닉이나 흥겨움에만 몰입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신명풀이는 놀이수준의 즐김 못지 않게 역사의 주체로서 자기 목소리를 마음껏 내는 일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이내 소리 들어보소' 하고 나도 한 마디 할 수 있을 때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어 진정한 신명풀이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총리대신으로서 매국내각의 수반 노릇을 한 이완용의 반민족 행위를 비판하는 사설이 메김 소리로 이어지는 것은 한층 높은 경지의 신명풀이라 할 수 있다.이완용을 일품 벼슬에 이른 정승으로 간주하고, '일품정승 이완용아, 충신 노릇은 못할 망정 나라를 팔아먹고 을사5적(乙巳五賊) 무리에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하고 개탄을 한다. 5적은 곧 한말에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가담한 민족반역자 다섯 사람을 일컫는다. 이완용이 당시 돈으로 400만 전을 받고 나라를 도매금으로팔아먹었다고 함으로써 매국사실을 한층 실감나게 노래하는 대목도 주목된다.

들어를 가네 들어를 가~네~헤

삼밭으로~ 들어를 가네

초매는 벗어 우장을 하고

속곳은 벗어 깔개를 하세

강릉의 김병기 어른이 부른 '사리랑'이다. 논매기 소리에는 이처럼 잡가들도 많이 끼어 든다. 강릉에서는 논을 매면서 오독떼기와 아리랑도 부른다.사리랑은 논매기 소리에 끼어 든 일종의 삽입가요이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남녀가 삼밭으로 들어가서 속곳은 벗어 깔개를 하고 치마는 벗어 우장 삼아 '에~ 제일적모 사리랑' 하고 야합을 한다. 야합을 할 때 치마는 가리개가 되고 속곳은 자리가 되게 마련이다.요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두고 정치권이 여야로 갈려서 특정언론과 야합하여 나서는가 하면, 언론사들 또한 정치권과 야합하여 죽기살기로 저항하거나 서로 죽일듯이 공격하고 있다. 여야의 상생정치를 촉구하던 언론들이 이제는 여야처럼 극명하게 나뉘어서 상극을 조성하는 상황이다. 한편에서 '언론 죽이기'·'언론압살'·'김위원장 답방용'이라 저항하면, 다른 편에서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사주를 구속한다'·'망하는 언론사 나온다'고 공격한다. 언론사 세무조사 보도가 아니라 마치 혁명 정부의 쿠테타적 담론처럼 들린다. 정당한 세무조사를 통해서 조세정의를 실현한다고 하는 마당에 왜 이런 해괴한 담론들이 횡행하고 있는가.언론개혁은 언론의 불공정 보도를 비판적으로 문제삼아야 하고 조세정의는 조세의 형평성을 통해 실현해야 마땅한데, 남녀가 야합에 이르면 속곳을 깔개로 삼듯이, 조세정의 문제를 마치 언론 죽이기나 언론개혁 문제로 엉뚱하게 환원시켜 버리고 만다.

김대중 정부 초기 시민단체에서 언론개혁을 부르짖을 때, 대통령은 언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들어 조선일보 방아무개 회장 및 전 고문에게 차례로 금관문화훈장을 주는 등 엇길로 가서 지탄을 받았다. '무늬만 개혁'이란 말이 실감나던 때였다. 그때 보수언론과 야합하지 않고 언론개혁을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은 세벌논매기하듯 언론개혁 시늉만 해도 될 터이다. 날카로운 호미날을 새워서 굳어진 논바닥을 뒤집어엎어야 할 아이논매기 때는 세벌논매기하듯 흙물만 일으키다가 세벌논매기할 때 와서 정작 호미날을 세워 뒤집어 엎으려드니 언론농사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죽기살기로 하는 일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다. 언론개혁도 언론을 바르게 살리는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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