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대구시 교육감이 14일 퇴임식을 갖고 8년의 교육감 활동을 마감한다. 그는 1993년 취임 당시보다 대구 학생들의 학력.체력.기능 등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창의성 교육'이 앞으로의 새 슬로건으로 대두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대구 교육은 늘 그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방황해 왔다.
지난 8년 사이 대구 교육의 규모는 외형상 대단히 커졌다. 3천872억원이던 시 교육청의 예산은 9천608억원으로 2.5배 늘었다. 학교는 461개에서 638개로, 교원은 1만6천83명에서 1만8천575명으로 증가한 반면(이하 유치원 포함), 학생은 51만여명에서 46만여명으로 5만명 이상 줄었다. 덕분에 학급당 인원, 교원 1인당 학생 수 등의 지표는 호전됐다. 초.중.고생 모두 준 반면 유치원생만 1만9천여명에서 2만7천여명으로 50% 가까이 는 것이 두드러진다.
이런 가운데 김 교육감은 임기 내내 한밤중까지 학교를 순회하며 공부를 독려할 정도로 '학력'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교육청이 성과 평가 잣대로 내세우는 '서울대 합격자' 수가 1993년 199명에서 2000학년도 527명으로 급증했다. 정원 대비 점유율이 4.1%에서 11.2%로 뛰어 서울에 이어 두번째가 됐다.
소년체전 성적도 좋아져 획득한 메달이 1993년 47개(금 17)에서 올해(부산 소년체전) 105개(금 41)로 급성장, 전국 3위까지 뛰어 올랐다. 실업계 고교생들의 기능경기대회 성적도 1993년 전국 11위에서 1997년 2위까지 치솟은 뒤 지금까지 2, 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김 교육감은 1957년 교단에 선 후 교감.교장.장학사.장학관.중등과장.학무국장.부교육감 등 요직을 빼놓지 않고 거쳤다. 최종 영예는 초대 민선 교육감과 그에 이은 재선.
재직 중 일관된 철학으로 아낌 없이 열정을 바쳤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실적(학력.입상) 지상주의, 엘리트(체육.실업교육) 투자 집중 등으로 인한 학교간 학력 격차 심화, 학교 체육 약화, 실업 교육 후퇴 등을 불렀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전교조 갈등 과정에서도 일정한 책임론에 부닥치고 있다. 강경 대응론을 주장하던 김 교육감은 1989년 교사 대량 해고 당시 학무국장을 맡았었다. 교사들이 복직하던 1994년, 전교조가 합법화된 1999년, 첫 단체협약을 체결한 2000년 등엔 교육감으로 이 문제와 씨름했다. 최근에는 단체협약을 성실히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러나 사욕 없이 외길을 걸어온 점에서 교육자의 모범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부인 관사 출입은 아파트 경비원이 아예 차단토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퇴임을 앞두고도 "아직 처리를 못다한 일이 있으니 한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할 정도.
하지만 추진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독선에 가까워 주위 의견 수합에 인색해 소수 참모진에게 의존, 임기 말에는 눈.귀가 어두웠다는 비판도 있다. 대구 교육이 전국에서 가장 관료적이고 경직됐다는 일부 비판도 그의 스타일 탓으로 치부된다.떠나기 직전 그는 "교육감이 바뀐다고 대구 교육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계와 뜻있는 시민들은 지금 지난 8년의 역사와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