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근대화가 동터 올 무렵 조그만 읍내 의사들은 부잣집에 환자가 생기면 직접 가방을 들고 찾아가서 환자를 돌보고 비교적 두둑한 진료비를 받아왔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이 아프다고 찾아오면 적은 액수를 받고도 이들을 치료해 주면서 생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의사들이 사회의 소득 재분배 역할에 한몫을 담당했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두둑한 돈을 내는 다른 나라의 환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어 즐거운 비명인 모양이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중상류층의 68.5%가 병이 나면 외국에서 진료를 받고 싶어 했으며, 미국에서 2차 진단을 받고 싶은 경우는 80.9%나 됐다. 하지만 28.8%가 정보 부족(38.9%), 환자의 신체적 부담(30.6%), 비용(27.8%) 등의 이유로 못간다고 했다. 국내 의료체계가 저가 의료보험에 바탕을 두고 있어 고급 진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이들의 미국행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재벌이나 고위층 정치인 가족 등에 한정됐던 '미국행 환자군'이 최근에는 중산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며 병원을 소개하거나 예약을 대행해주는 복덕방과 브로커들까지 등장하고, 미국의 병원들도 통역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현행 의료체계로는 고급 진료가 들어설 여지가 없으므로 양 위주보다 질 위주의 의료 시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의료비는 한국의 10배 정도나 된다. 건강검진으로 유명한 미네소타주 로체스터 메이요클리닉의 검진비는 한국보다 10~20배나 비싸다. 여행 경비만도 200만~300만원이 들고, 암인 경우 1억~3억원의 치료비가 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고급 진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미국 병원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지고 있으며, 점차 속도도 붙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엄청난 국부 유출이 되고 있는데도 미국행 환자들이 러시를 이루는 것은 분명 큰 문제다. 더구나 미국에서 진료를 받는 한국인이 연간 5천~1만여명이나 되며, 이들이 뿌리는 의료비만도 줄잡아 1천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의료체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이 같은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고급 진료가 설 자리를 만들어 환자들을 붙들 수 있는 의료체계의 개선이 아쉽기만 한 현실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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