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폐거물 마구 버려 동해 '중병'

인류의 미래를 지켜 줄 '마지막 보루'라는 바다가 함부로 버리는 폐그물로 중병을 앓고 있다. 난마처럼 뒤엉킨 폐그물에 물고기는 물론이고 귀하다는 대게가 죽고 심지어 고래까지 목숨을 내 놓는다. 해조류마저 살지 못해 해양 동물 서식.산란장을 파괴, 수산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 것.

◇현장 풍경=지난 10일 오후 울진 후포항 동쪽 부두. 어민들의 작업장인 이곳에는 엄청난 양의 폐그물이 쌓여 있었다. 한켠에서는 가정 생활 쓰레기까지 더럽히기에 가세했다. 군청이 작년에 수십대분을 처리했다지만 또다시 언제 그랬더냐는 식7번 국도변 공터.해안도로변 등도 마찬가지이고, 썩는 악취까지 진동했다.

하지만 육상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관공서가 나서서 치우기라도 하기 때문. 바다 속은 그야말로 거대한 폐그물 투기장이라고 잠수 경험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다이빙 숍을 하는 이모씨는 "후포 동방파제 500여m 바깥에만 나가도 수심 20~30m 바다 밑이 온통 폐그물.통발 등으로 뒤덮여 있다"고 했다. 거기에 걸려 찢겨진 우산, 고무장갑 등 각종 생활쓰레기까지 퇴적, 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는 것스쿠버 다이버 손병욱(34.후포)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으나, 이제 바다 밑엔 폐그물에 걸려 앙상한 뼈만 드러낸 죽은 물고기가 즐비하고, 삭은 폐그물이 바위를 덮어 해초들이 못자란다"고 했다.

이남훈(32.후포)씨는 "어장을 했던 수역은 어디 없이 모두 쓰레기장화 됐다"고 했다. 어민들이 어망을 철거하기 쉽잖아 거의 그냥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또 폐그물이 스쿠버 다이버들의 발목에 감기는 경우가 적잖고, 선박 스크루를 못쓰게 만드는 해난 사고의 주범이기도 하다고 했다.

영덕 강구의 대게잡이 전문가 권용하(63)씨는 "계속 이러면 어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냥 바다에 버리는 게 당장은 이득인 것이 우리 어업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수거는 해 왔나=폐그물 발생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추정하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해양수산부 등이 조사를 제대로 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 이러니 어민은 말할 것도 없고, 폐그물 문제는 그동안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온 셈.

바꿔 말하면 그 동안 정부나 수협, 어민들이 폐그물 수거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관청들이 그나마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이다. 울진군청은 1999년 해군 구조함 등을 지원 받아 죽변 앞바다에서 15일만에 무려 360t을 건져 올렸다. 작년엔 후포 앞바다에서 6일간 230t을 수거했다. 올해도 폐그물 수거비 1억8천여만원을 배정해 두고 있다.

포항시청은 올해 처음으로 폐그물 인양을 시작할 계획이다. 작년에 1억여원을 들여 전문업체에 의뢰해 방치 폐어망이 수천t이나 확인했기 때문이다. 올해 8억여원을 들여 대보항 인근 2천여ha 수역에서 인양 작업을 할 예정. 해양수산부도 85억원을 들여 작년에 15개 수역을 청소한데 이어, 2004년까지 전국 100여개 주요 항구부터 청소키로 했다.

그러나 폐그물 수거는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바다 밑에 있는데다 무게가 많이 나가 대형 구조함 등의 지원 없이는 시청.군청들이 해내기 불가능한 일. 운반.처리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 엄두 내기가 쉽잖다.

◇제대로 된 대책이 없을까?=폐그물은 재활용도 잘 안된다. 과정이 번거롭고 득은 적기 때문. 전국에 있는 처리 업체라야 겨우 20여개가 전부이지만 그나마 전문 업체는 아니고, 경북에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거의가 영세해 시군청에서 운반비를 부담해 줘야 처리하는 실정.

그래서 폐그물은 소각되거나 매립돼야 하나, 유해물질 등 때문에 그나마 쉽잖은 게 현실이다.

이때문에 폐그물에 관한 전문 관리.수거.처리 시스템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에게 일치된 의견이다. 폐그물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못하도록 폐그물 반납 때만 새 그물을 팔 수 있도록 어구 관리를 강화하고, 폐기물 분포도를 작성하며, 수거 양.종류 등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해야 한다는 것.

경북 통발협회 이재길 회장은 "일본의 일부 통발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물에 녹아 내려 오염을 유발하지 않도록 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민들의 의식 변화. 해수부 원청재 해양보전과장은 "버리는 일이 바로 자신의 어장을 황폐화 시키는 일임을 깊이 깨닫는다면 어느 어민이 마구 버리겠느냐"고 했다.

포항.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영덕.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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