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어느 중학교에서는 수업이 끝난 시간인데도 대부분 학생들이 남아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내일 교육청에서 높은 사람이 온대요"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학교장은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를 오는데, 손님 맞을 준비를 시키는 것도 교육 아니냐"고 했다.
한 고교 공개수업. 한 시간 내내 교사의 부드러운 말씨와 함께 PC와 OHP를 활용한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이 끝나자 교실을 빠져나오던 학생들끼리 "말 안 들으면 화내고 욕도 하던 선생님이 오늘 참 다르네" 하며 키득거렸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바뀌지 않는 모습. 학교 시설만 좀 나아졌을 뿐 교육청도, 교장도, 교사도 그대로다. 학생들의 불만도 달라진 게 없다. 한 중학교 교사는 "공개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에게 치장과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 같아 늘 씁쓸했다"며 "교육청이 달라지려면 이런 전시 행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대구 교육 행정의 경직성은 시 교육청에서부터 단위 학교에 이르기까지 꼭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학교에 대해 권위를 내세우는 장학사, 교사 위에 군림하려는 교장, 학생을 주체성 없는 피교육자로 몰아붙이는 일부 교사들까지 겉모습만 다를 뿐 관료주의에 찌든 습성은 매한가지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관료 출신의 후보들조차 지적한 교육청의 습관성 공문 하달은 대표적인 사례. 한 후보는 "교육청 장학사나 일반직원들이 인터넷을 잠깐 검색해보거나 전화 몇 통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도 공문으로 각 학교에 내려보내 빚어지는 행정력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교육청이 지정하는 시범·연구학교도 성과보다 폐해가 더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년 정도 기간으로 시범학교에 선정되면 교장에서부터 교사에 이르기까지 온 학교가 그 주제에만 매달린다. 좋은 결과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시범학교 관련 업무에 1년 넘게 매달리고 있다는 한 초교 교사는 "시범이 된다는 건 나쁜 결과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인데, 과정상의 오류나 부작용은 일절 무시하고 좋은 결과만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학교 내의 관료주의적인 관행도 예나 다를 바 없다. 교무회의에는 교장, 교감, 부장교사로 이어지는 일방적인 지시와 전달만 있을 뿐 교사들끼리 학교 안팎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토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교조 가입 교사들이 늘면서 부당한 지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학교 간부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불손하고 무례한 작태'로 치부되기 일쑤.
학생들의 자치기구인 학생회도 형식적이기는 마찬가지. 학교에서 허용한 극히 일부 문제에 대해 모범생들끼리 의견을 맞추는 모임일 뿐, 정작 자신들의 관심사인 수업, 시험, 교복, 두발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할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 안 된 학교가 대다수다. 김형섭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율을 스스로 배우도록 하는 것은 학교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면서 "학급회의와 학년, 전교 학생회 활성화를 위해 교육청과 교장, 교사들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구 교육 행정의 경직성과 묵은 관료주의는 내부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지만, 학생들에게 헛된 권위와 겉치레를 중시하게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된다. 특히 예전에 비해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디지털 세대 학생들에게 종래의 낡은 틀을 고집할 경우 학교에 대한 불신만 키우기 십상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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