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 애니메이션의 현재와 미래

세계 애니메이션의 30% 이상을 그려내는 3대 애니메이션 제작 국가 한국. 그렇지만 98년말 약 3천200억원대 규모를 보였던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99년엔 2천700억원으로 마이너스 15.6%의 큰 감소세를 보였다(문화관광부 2000년 문화산업 백서). 세계 3대 애니메이션 제작국가라는 엄청난 규모를 지니면서도 단순한 하청작업에 그치면서 애니메이션 업계 역시 선진국 수준에는 못미치고, 후발국들에게는 치이는 '크라잉 넛' 현상에 울먹이고 있다. 일찍 애니메이션에 눈을 떴지만 부가가치가 높지 않고, 내용의 독창성이 결여돼 애니메이션 하청일을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 조금씩 내주면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규모가 점점 왜소해 지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난기류 탓으로 98~99년 의욕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섰던 지역업체들도 기진맥진이다. 한번 제작하면 확대재생산이 용이한 '창구효과'(Window Effect)가 큰 분야이지만 규모가 영세하고 자본이 취약한 지역기업체의 고독한 사투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어서 애니메이션 산업을 통한 이익창출은 쉽지만은 않다.

지방자치단체가 장단기적인 전략을 수립하여 벤처업체 지정 및 자금지원 뿐만 아니라 상품기획, 마케팅 등 치밀한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육성 지원해야하는 것은 물론 학계나 문화계에서도 전통문화와 역사를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콘텐츠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성공한 애니메이션 영화 한편이 일년치 자동차수출에 맞먹는 고도의 가치를 지니는 문화산업시대에 지역 애니매이션업계의 실태를 점검하고 애니메이션 산업 활성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본다.

◇지역 애니메이션 실태

지역의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들은 한마디로 고전하고 있다. 98년 에어매크로, 고유, 애드 온 디자인 등이 애니메이션 업체로 등록하고 활발한 영업을 폈지만 IMF와 장기적인 경기침체, 벤처업계의 거품빠지기 등이 겹치면서 지금은 종적을 찾기가 어렵다. 현재는 PDZ(대표 박순), 애니원(대표 백용우) 등 2개 업체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애니원의 경우 최근 동아.LG 공동주최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본선에 진출하는 등 성과를 거뒀지만 별다른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백 대표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시장이 지역에서는 전무한데다가 서울 하청도 지역적인 거리감때문에 따내기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토로한다. "힘든 애니메이션을 고집하지 말고 잘 팔리는 게임이나 기업체 홈페이지 제작 쪽으로 방향을 바꿔볼까"라고 농중진담을 털어놨다.

지난해 9월 법인등록을 마치고 대구벤처센터에 입주해 있는 PDZ는 3D 풀 애니메이션'크리스마스 밴드'를 만들어 외국 대형업체와의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인 변호사의 자문까지 받아가며, 영문홈페이지 제작은 물론, 애니메이션의 음반제작까지 복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피디지는 미국의 초대형 업체와 손잡는 일이 결코 쉽지않은 일임을 절감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선두그룹과의 계약을위해서는 어차피 약자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지만 결코 따라오지 못할 내용의 독창성과 사람의 뼈마디까지 인체공학적으로 연구해서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고, 시각적 효과까지 높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콘텐츠로 꿋꿋하게 계약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PDZ 이사 이상훈씨는 "대구에 계속 남아 국제시장과 서울 등 동시에 겨냥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작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대학에서는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를 꾸준히 늘리면서, 예비인재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99년대구 미래대, 안동정보대, 경북실전 만화사진영상과 등 지역 3개 대학에 그친 애니메이션 관련학과는 현재 경운대, 영진전문대, 성덕대 등으로 과 개설이 확산되고 있다. 덩달아서 첨단 기자재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세계적인 눈을 틔워주고, 마켓쉐어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 경영기법 등을 가르칠 전문 교수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미래대 사진영상미디어과는 지난 3월, 디즈니에 이어 세계 2위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호주의 '에너지 엔터테인먼트'사에서 근무하던 김지수씨를 전임강사로 채용하면서 오는 8월 개최되는 제5회 서울국제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 학생작품 출품을 준비하는 등 활력을 띠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애니마투스 디자인 학원(원장 박형근)이 3D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데, 이곳 수강생들이 애니메이션 잡지 '3D 아티산' 공모전에서 5회 연속 수상을 하는 등 숨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인력조차 지역엔 취업할 곳이 거의 없고, 그나마 '빵빵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하루가 무섭게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애니메이션 활성화 대책

굴뚝없는 경쟁산업인 애니메이션을 문화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당장 풀어야할 과제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우선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 발굴, 인프라 구축, 업계의 기획력과 국내외 홍보 마케팅 능력 함양, 산학관이 한데 모인 구심점 확보 등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김지수 대구미래대 교수는 "애니메이션은 공학분야가 아닌 예술분야임에도 기자재 확보에 안간힘들"이라며 "그럴 경우 단순작업 하청에 머물게 돼 지역 애니 발전은 요원한 만큼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또 호주 등지에서는 작품기획단계부터 적극적인 마케팅이 시작되는데 우리 경우 마케팅이 전혀 안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일련 과정중 지역이 할 수있는 고부가가치 부분으론 캐릭터 등의 모델링 작업을 들 수 있다"며 갈 방향을 제시했다.

예산이 취약한 지방자치정부가 첨단 기기를 들일 경우, 개인 업계에서 구입하기는 어렵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꼭 필요한 기기를 도입, 무상 혹은 아주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작업을 펴야한다.

박순 PDZ 대표는 "각 대학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 학과와 고가 소프트웨어 구입 추세가 늘어나면서 좋은 인력도 많이 양성될 것인 만큼 지역에 흩어져 있는 애니메이션 인프라를 통합해야 지역업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와함께 서울의 규모 있는 업체와의 연계전략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코스닥 시장과 마찬가지로 지역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도 거품이 빠지는 단계"라며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훨씬 탄탄한 토양이 구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형근 애니마투스디자인 학원 원장은 "기술적 문제는 포장에 불과한 사안"이라며 "애니메이션도 사람이 하는 작업인 만큼 상호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팀웍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례로아톰의 허리띠를 빨간색으로 했으면 이것이 애니메이션 1편이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 색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서로 개성을 내세우다 급기야 다홍색으로 변해버린다는 것. 그는 또 "국내건 우리지역이건간에 머리는 없고 손, 발만 있는 상태가 우리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주소"라며 기획력을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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