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대문명을 찾아서-비의 신 '차끄'숭배...생명수 염원

◈(11)우슈말(2)

마야유적 우슈말은 울창한 숲속에 있다. 7세기초 마여 고전기에 번성한 이 유적은 똘떼까 문명의 영향은 적고, 뿌욱(Puuc, 마야언어로 유까딴 반도 중앙의 구릉지대라는 뜻) 양식이라고 불리는 마야색이 짙은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전회에도 일부 언급했듯이 뿌욱 양식의 특징은 건축물의 벽 한면에 조각을 새긴 돌을 조합하여, 복잡한 기하학적인 무늬를 모자이크하거나 뱀 모티브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특히 우슈말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마법사의 신전' 등에 장식되어 있는 엄청난 수의 차끄-비의 신(神)이다.

◈하천없어 물저장 어려워

이처럼 비의 신 차끄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 지방이 카르스트 지대여서 하천이 거의 없고, 물의 저장이 쉽지 않았다. '지배자의 관저' 앞 마당 여기저기에 뚫려 있는 저장공의 존재도 비를 모아두는 물 저장 탱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음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농사는 빗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생활용수도 빗물에 의지했기 때문에 비의 신 차끄를 주신으로 열렬하게 숭배했다.

우슈말에 있는 '마법사의 신전'이나 사방에 건물이 들어서서 중세 수도원처럼 장방형으로 꽉 막힌 사원, 거북이 신전, 대피라미드, 총독의 관저는 물론 우슈말보다 유적의 규모나 크기가 적은 카바, 사일, 라브나에 있는 유적에서도 차끄신은 숭배의 대상이다. 카바에 있는 한 피라미드〈사진〉에는 무려 260개의 차끄가 새겨져 있다.

◈코모양따라 상반된 의미

마야인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비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차끄를 우슈말 유적 곳곳에 새겼는데, 차끄는 코 모양에 따라 감사와 기원의 두가지 상반된 의미를 지닌다. 차끄의 코끼로 코처럼 생긴 긴 코가 하늘을 향해 위로 올라간 모양은 생명수를 내려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이고,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것은 코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차끄의 코는 하늘을 향하지 않고 땅을 내려보고 있어서 비를 기다리던 마야인들의 간절한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야인들은 오랫동안 가물면 비의 신 차끄가 노했다고 믿었다. 차끄신의 진노를 풀고 구름과 비를 불러오기 위해서 신전을 짓고 노래와 춤, 기도와 공양을 바쳤다. 이곳 우슈말에서는 비의 신 '차끄'와 날개를 펼친 뱀의 신 '꾸꿀깐'이 주신(主神)으로 위치하고 있음을 이미 보았다. 꾸꿀깐의 뱀머리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조각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의 탄생을 염원하는 마야인들의 마음의 표현이다. 그런데 신이 만든 도시 떼오띠와깐(5월14일자 게재)에서는 '껫살꼬아뜰'이라는 깃털이 난 뱀신이 물과 농경을 주관하던 신과 비의 여신인 뜰랄록, 그리고 깃털달린 표범인 재규어 하과레스가 신으로 대우받고 있었다. 여기에 달과 해가 주신으로 등장하면서, 태양신을 위한 이른바 '피내기 의식'에서 발전하여 인간의 심장을 바치는 인신공희의 습속이 고정화되어 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이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도시국가의 형태로 옮겨 다니면서 인신공희에 더욱 더 빠졌던 것은 이른 바 보편적 박애를 실천할 수 있는 고등종교가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산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희생은 없었지만, 짐승의 희생은 있었고, 이른바 순장(殉葬)의 습속은 있었다. 죽은 이의 무덤에 강제로 산 이를 함께 묻는 순장도 처음에는 자발적인 면이 있었을 것이지만 점차 의식화되면서 강제성을 띠었던 것으로 매장문화재 발굴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리의 고총 고분에서 발견되던 순장이 사라진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불교가 유입되면서 인간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비정신의 유포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에서 4~6세기에 일어났던 인식의 변화가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 그들을 16세기까지 극단의 정복 전쟁과 인신공희로 몰고 갔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슈말에서는 야간에 빛과 소리의 공연인 '스펙타클 오브 라이트 앤드 사운드'가 펼쳐진다. 유적답사를 끝낸 우리는 저녁을 먹고 다시 입장을 해야 했으므로 서둘러 식당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면서 들은 마리아치(거리의 악사)의 고운 음악에 매료된 우리 몇몇은 따로 불러서 몇 곡 더 듣다가 일행이 탄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짧은 거리라는 말에 안심을 하고 유적지까지 걸어 본 우슈말의 밤은 맑은 공기를 들여 마실 수 있어 좋았다. 거기에 저녁 먹을 때 쏟아진 소낙비는 시원함과 깨끗함까지 보태 주어서 더욱 상쾌하였다.

◈꿀, 보석 등 예물들고 순례

오랜 가뭄이 차끄신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여기던 우슈말의 마야인들은 차끄 신의 진노를 풀고 비를 몰고올 구름을 불러오기 위해 춤, 노래, 공양물이 필요하였으므로, 가까운 사일, 라브나, 카바 등지에서 꿀과 보석, 향료 등을 예물로 들고 순례를 하여 차끄신에게 바쳤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저녁 먹을 때 쏟아진 소나기와 야간공연이 끝나자 다시 온 비는 아무래도 우리 단원들의 노래공양을 차끄신이 듣고 적당히 내려주신 모양이라고 덕담들을 하면서 마야인들의 차끄신을 기억하였다.

'빛과 소리의 쇼'는 우슈말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4개의 건물로 이뤄진 '사원'건물에서 레이저로 각 건물을 비추면서 설명과 음악, 음향효과로 하는 공연이었다. 내용은 먼저 우슈말 유적의 건축배경을 설명하고 비의 신 차끄에 대한 기원과 공양을 '차끄!', '차끄!'하면서 우뢰와 번개 등의 모습을 레이저로 쏘면서 재현해 주었다.

◈우슈말-치첸잇사 애닮은 사랑

처음 접해 본 나로서는 "유적지의 밤을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구나"하고 무척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우슈말 공주와 치첸잇사 왕자와의 애닯은 사랑이야기가 펼쳐졌다. 우슈말의 왕이 그의 공주를 마야빤의 왕자와 결혼시켜 세력을 키우려 한 반면, 치첸잇사에서는 이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방해하는 내용이었다.

레이저쇼로만 펼쳐져 다소 단순한 공연이었지만, 객석에 가득한 외국인들을 보면서 우리의 유적지에 대한 활용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글:김복순(동국대 교수)

사진:최종만(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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