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명운동본부 한국지부 장경화씨-죽음의 문화에 대항 아름다운 생명 지킴이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월급쟁이의 아내, 청소와 빨래, 집안 대소사에 쫓기는 보통 주부 장경화(44)씨, 무심코 스쳐 지난다면 사람의 눈을 잠시도 끌지 못할 것 같은 이 보통 아줌마는 그러나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다.

장씨는 생명운동가다. 지난 90년 생명과 환경에 처음 관심을 가졌고 97년 이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미혼모.출산 클리닉.성교육.매춘.안락사.사형제도.환경파괴 등 생명에 관한 모든 전투에 원군을 자임하고 나선 것. 급속하게 퍼지는 이른바 '죽음의 문화'에 대항을 선포한 것이다.

그녀는 국제생명운동본부(HLI) 한국지부 간사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아직 회원도 적고 규모도 작다. 혼자서 세계의 선진 자료를 수집, 번역하고 배포한다. 아직 명함 하나 없는 그녀에겐 초고속 인터넷이 동료이자 비서.

장씨는 지난해 1년에 걸쳐 자료를 준비하고 홈페이지(www.hli-korea.org)를 직접 만들었다. 도메인 등록은 물론이고 서브 운영에 드는 비용까지 장씨 개인이 부담했다.

요즘 그녀가 매달리는 일은 사이버 상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털어놓는 갖가지 고민들을 전문가의 의견을 찾아 답해준다. 필요한 전문기관과 복지시설 알선도 그녀의 몫. 법적 대응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법률 정보도 제공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성(性).생명지식은 본질을 흐리고 있어요. 성교육이 오히려 성적 일탈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지요. 행위중심의 교육이 한 존재의 역할 본질을 흐리게 한다는 겁니다".

장씨는 우리의 성교육이 선진국에서 이미 실패했던 프로그램을 재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문제점을 끄집어내 회원들의 토론에 부치는 일은 그녀의 중요한 업무.그녀의 '운동'은 사이버 상담과 토론에만 그치지 않는다. 회원들과 더불어 가창댐. 비슬산 등에 은행나무 수백 그루를 심었다. 학교와 종교단체.소년원 등을 찾아 생명과 환경 바로 알리기에도 나서고 있다. 비싼 비행기 값을 들여 인도.캐나다.미국 등 국제 생명대회에 꼬박꼬박 참석한다. '생명'의 중요성을 아는 남편이 유일한 후원자인 셈.

"생명운동은 은행나무처럼 살자는 거예요. 은행나무는 제 옆에 작은 새싹이 나면 그 쪽을 피해서 가지를 뻗어요. 옆에 솟아난 새싹이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죠". 개인적 비용 부담이 너무 크지 않느냐는 말에 장씨는 그렇게 답했다.

그녀의 생명운동에는 수식어가 없다. 수학과 컴퓨터를 좋아했던 사람답게 매사를 분명하고 빨리 처리한다. 자료도 빨리 찾고 상담자의 질문에도 빨리 답한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어려운 일을 외면하는 법도 없다. 집안의 청소도 설거지도 빨리 빨리 해치운다. 바쁜 그녀에겐 미적거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장씨의 작업장인 대구시 중구 남산3동 천주교 대구교구청내 사무실 책장엔 갖가지 생명에 관한 비디오가 진열돼 있다.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생명, 환경 관련 영상물과 서적들. '죽음의 문화'에 대항하는 그녀의 전쟁이 승리로 끝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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