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冊盲 사회'

인터넷의 보급과 경제의 글로벌화는 21세기의 양대 조류라고 한다. 피터 드러커, 레스터 서로, 사카이야 다이치 등은 그들의 저술을 통해 이 같은 논조로 한결같이 인간의 창의력이야말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창의력을 높이는 데는 독서가 으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등 정보 네트워크가 빠르게 구축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채울 기본적 인프라인 도서관이 놓인 현실을 창피하기 그지 없다.

▲국립도서관 등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수는 400여 곳으로 인구 대비 수는 고작 11만5천명에 1곳이다. 핀란드가 3천200명, 독일은 4천명, 미국이 2만6천명에 공공도서관 1곳인데 견주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불명예스럽게도 OECD 국가 중 꼴찌다. 더구나 장서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반인들의 이용은 극히 미미한 형편이며, 대부분이 고시생이나 입시생들의 '독서실'로 전락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비는 지난해의 경우 정부 지원 50억원에 지나지 않으며, 지자체 분담금까지 합쳐도 200억원 수준이다. 그 결과 1인당 장서 수가 0.47권에 머물러 핀란드의 7.15권, 덴마크의 5.96권, 미국의 2.59권, 일본의 2.56권에 비하면 부끄러워 할 정도가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의 1999년 한해의 도서 구입비가 우리 정부 전체의 예산의 5배가 넘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영향은 출판시장에도 그대로 미친다. 일반 수요가 적은 인문서적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선진 외국들은 도서관들이 일정 부수를 소화해 제작이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고, 갈수록 얄팍한 독서층 때문에 양서 공급이 기피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도서시장에 대한 독자들의 외면을 부추기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오죽하면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이 우리 사회를 '책맹 사회'라고 비판하고 나섰을까.

▲조선조에는 조용하고 풍광이 뛰어난 폐사나 정자에 독서당을 개설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오로지 책읽기에만 전념하도록 나라가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세종은 책을 읽도록 휴가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취미난에 '독서'라고 쓰는 경우마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그 전통이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지. 인제 양성과 창의력 높이기를 위해서는 인터넷시대에도 독서는 더욱 중시돼야 하리라고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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