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신공왕후'
지난 7월12일자 17면 '임나일본부의 허구를 파헤친다' 상편에서 언어학자 정연규교수는 '언어속에 투영된 한민족의 고대사'에서 일본 야마토(大和) 정권에게구다라(百濟)가 조공을 바치던 항구 다다라(大大良)와 다사(帶沙)는 일본사가들이 왜곡하듯이 경남 합천과 하동(韓多沙)이 아니라 일본 조도(長島)군에 있는다다라(大多羅)임을 언어학적으로 풀이했다. 이를 좀더 자세하게 파헤쳐보자. 조도군의 가치향(勝鄕)에 있는 다다라가 '닛본쇼기'에 나오는 시라기(新羅)가 점유한 다다라였음은 거기에 작은 규모의 한국형 산성이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입증된다. 이 일대의 구릉지대에는 기비츠오카가라기(吉備津岡辛木)이라는 신사가 있다. 여기서 '가라기'는 '가라기'(韓城)으로 풀이되며, 산성이 있는 구릉지대를 '가라오'(韓尾)라고 부르는데, 거기에는 돌담과 흙담자리가 남아있고, 큰돌을 쓴 횡혈식 돌간 무덤도 있다.
'환단고기'(桓檀古紀)에서는 임나는 서북계에 있는데, 북에는 바다로 막혀있다. 국미성(國尾城)에서 통치했다고 쓰여져있다. 여기서 국미를 일본고대어로 구미오라고 하며, 이 지명은 대마도 서북쪽의 가리오(狩尾)에 비정된다고 사학자 이병선은 주장하고 있다. "가리오라는 지명이 대마도,기비(吉備)에도 있는 것을 볼 때, 가라 사람들이 이동과 동시에 지명도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정교수는 밝힌다.
기비 지방의 다다라벌의 뒤에 솟은 게시코산(芥子山, 2328m)을 고대 일본에서는 가라고산(韓子山)이라고 불렀다. 겨자 개(芥)의 일본 음이'가라시'인데, 이 '가라'는 매울 신(辛)자를 쓰기도 한다. 야마토 정권이 파견한 병사들이 2~3년이나 임나에 머물면서 임나의 여자들에게 장가들어아이를 낳았다. 이렇게 야마토의 남자와 임나의 여자사이에 생긴 아이를 '가라코'(韓子)라고 불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 조도 가치향에 있는 다다라벌이라는 지명과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가라코산이라고 부른 점, 가리오에있는 가라기산성, 닛본쇼기의 계체기(繼體紀)의 기사내용을 종합해보면 일본 기비 지방 조도가 바로 임나가라(任那加羅)가 있었던 곳이라고 정교수는 못박는다.
하지만 일본의 분위기는 역사적 사실과는 정반대로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곡필을 마다하지 않으며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동해 바다에서먹고버린 라면 봉지가 파도를 타고 그대로 건너가 닿는 곳인 일본 시마네현에 수년전에 출장갔을 때의 실화 한토막.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벽에왠 그림이 붙어있었는데 동행했던 일본 공무원은 일본의 신공왕후가 신라를 쳐서 신라땅을 자기네 영토로 끌어들이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왜곡을 일본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인양 조직적으로 세뇌하고 있고, 한국 침략의 근거로 혹은 역사교과서 왜곡의 밑둥치로 삼는 터무니없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
'닛본쇼기'에 의하면 '주아이왕'(仲哀王) 9년 2월에 주아이왕이 규슈(九州)의 구마소(熊襲)족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그의 비(妃)인 신공왕후가 같은해 9월에 제국에 영을 내려 선박을 모으고 10월에 친히 시라기(新羅)를 정벌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닛본쇼기에 시라기 정벌연대를 서기 200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일본이 통일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3~4세기 전의 일이어서 맞지 않는다. 역사상 일본이라는국호와 천황 칭호가 생긴 것이 6세기 말에서 7세기 경이었다. '삼국사기'에도 일본 국호가 생긴 것이 신라 문무왕 10년 즉 서기 670년이라고 쓰여있다. '삼국사기'에서 서기 200년은 나해니사금(奈解王)5년에 해당되는데, 그해 신라에서는 7월 한낮에 서리가 내려 풀이 말랐고, 9월에 일식이 있었고, 왕이 친히 알천변에서 열병을 하였다는 사실의기사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닛본쇼기에서 신공왕후가 시라기를 정벌할 때의 장면은 단순히 이렇게 적혀있다. "왕후가 가사히우라(木畺日浦)에 돌아와서 머리를 풀고… 동 10월3일에 와니쓰(和珥津)를 출발, 시라기에 도착했다. 시라기 왕이 백기를 들고 나와서 엎드려 춘추로 조공하겠다고 약속했고, 구다라(百濟)와 고마(高句麗)의 국왕도 군세를 보고 놀라 항복하고 조공할 것을약속했다…". 여기서 일본 사가들은 이 시라기를 경주의 신라라 억지로 끌어붙이고,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 또 한번 더 따져보자. 위 닛본쇼기의 '가사히우라'는 주아이왕의 궁이 있는 기타구슈의 지명이다. 다음으로 신공왕후의 배가 출발했다는'와니쓰'는 어디인가. 일본 고대어에서 큰배를 '와니'라고 하는데, 위의 '와니쓰'는 큰배를 정박하는 나루란 뜻이어서 일본내에서 '와니쓰'란지명이 여러곳에 분포하고 있다. 고로 신공왕후가 발선한 '와니쓰'는 기타구슈에 있던 지명가운데 한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공왕후가정벌한 시라기는 일본 쓰시마(對馬島)와 사고(佐護)에 있었던 시라기이지 결코 경주 신라가 아니다.
그럼 신공왕후는 누구인가. 신공왕후의 본명은 '오기나가다라쓰히메미코도'(息長帶比賣命)이며 그 형태소는 오+기+나가+다라-쓰+히메+미코도이다.이 미코도는 미+코도로 분석되는데 이 미코도의 미는 존칭사이다. 따라서 코도가 원래의 말로 코도는 한국말의 어른을 나타내는 '장'(長)에 해당된다. 다음은 히메를 보자. 일본 상대에서는 남자에 대한 미칭으로 히코(彦), 여자에 대한 미칭으로 히메(姬)를 많이 쓴다. 또 다라쓰라는형태소를 보자. 다라쓰는 신라 건국시에 소벌도리(蘇伐都利)의 도리와 같은 어사로서 다라쓰, 다라사, 다리, 도리는 같은 것이며 쓰나 사는 어말에서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보통 다리는 일본의 왕의 이름에 쓰인다. 다음에는 나가를 보자. 나가는 일본어 '中'을 뜻하며, 국왕은항상 중토(中土)에서 정사를 본다. 기는 城을 뜻하며, 支己등과 같은 어사이다. 오는 일본어로 大를 뜻한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신공왕후를 일컫는 오기나가다라쓰히메미코도는 대성의 중토에서 정무를 보는 여자 미코도이다.
결국 신공왕후는 경주의 신라를 정벌한 게 아니라 대마도에 있는 시라기를 구슈 와니쓰에서 출발하여서 정벌했던 여성에 불과하다.신공왕후는 일본내 첫 여성무당이라는 설도 있다.
최미화기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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