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한 발만 더 디디면 벼랑인데 바로 거기서 뿌리를내리는 소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는 늘 바

르르 떨고 있는데, 에멜무지 금방 새로 변해 날아

가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아슬함으로 잔뜩 발돋움

한 채 바르르 떨고 있는데, 아직도 훌쩍 날아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가 기다린 것은 무어냐

-송재학 '소나무'

밀도 있는 시언어 운용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의 시인데, 이 시는 의외로 상황 설정이 간명하다. 야산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소나무가, 그것도 등이 굽고 허리가 약간 비틀어져,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속담을 낳게한 듯한 그런 소나무가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런데 그 형세가 마치 새가 날아갈 것 같은 모습이지만 바르르 떨기만 할뿐 채 날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소나무에서 못난 인생살이를 느낀다. 절벽 끝에 떠밀려도 죽지도 어쩌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서민들의 삶, 그들에게도 분명 어떤 기다림은 있을 것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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