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랏님이 인정한 농꾼들 모임 "순흥 초군청"

'초군청'(樵軍廳)을 되살리라! 오는 10월 전국 민속예술 축제가 열리게 된 영주에 다급한 화두가 던져졌다. 전국 어디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이 전통을 민속놀이화 해 축제 때 공연키로 한 것. 모양 잡힌 뒤엔 또다른 곳에 쓰려는 복안도 깔려 있다.

◇무엇이 초군청=얼른 들어 무슨 관청 같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초군'은 글자 그대로 나무꾼이라는 말이지만 보다 넓혀 농가의 막일꾼을 가리킨다. 그들을 다스리던 관청이었을까?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조 말기 쯤부터 순흥에 내려 오는 농군(상민)들의 자치 기구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지금도 전래돼 조직이 이어지고 있고, 대체로 농사일 품삯 조정, 성황제 모시기 및 줄다리기 행사 주도 등등의 역할을 해 왔다. 1977∼78년 사이에 초군청 좌상을 지냈던 김수옥(73)옹은 "초군청은 한일합방 2년 전인 1908년에 김교림이 직인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기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문헌·기록이 없어 시원과 목적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으며, 연구자에 따라 추측도 다르다.

향토사가 송지향(84)옹은 '영주·영풍 향토지'에서 "토호들을 주인으로 한 나무꾼들이 상전 세력을 업고 횡포를 부려 그걸 근절시키고자 김교림이라는 사람이 건의해 조정으로부터 직인까지 받아 초군청을 설치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민속학 전공자 김재호씨는 "그냥 초군들의 모임일 뿐"이라고 추정했다. 이미 두레를 '농청'(農廳) '계청'(契廳)이라 불러 온 것과 마찬가지 명칭 유래라는 것. 더욱이 김교림 역시 토호인데 어떻게 자신들의 권위에 대항할 기구를 앞서서 만들었겠느냐고 의심스러워 한다.

순흥 읍치를 연구했던 이기태 박사의 생각은 또 달랐다. "순흥의 대지주 세도가가 지역민을 효과적으로 지배·통제하기 위해 초군청을 조직화한 통합 장치였다"고 보는 것. 그러면서 "그 후 1919년에 초군청은 소농조합에 흡수돼 성황제를 주재하는 집단으로서의 성격만 유지하고 주민 통합기능은 조합에 흡수됐다"고 했다.

◇어떻게 전승돼 왔나=일제시대 분리됐던 기능은 광복 이후 다시 초군청으로 통합 흡수됐다. 관 후원에서 벗어난 순수한 지역민 자치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 것.

이런 과정을 거쳐 온 초군청은 음력 7월 초순 직인 찍힌 방을 돌려 각 마을 초군을 동시에 소집, 푸꾸(풋굿·樵宴) 모임을 하면서 땔감 채취용 도로를 보수한 후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여흥을 즐겼다. 푸꾸는 이런 저런 의논도 하면서 함께 활동 방향을 토론하는 행사.

김 옹은 "푸꾸날 마을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효자효부를 표창하고 몹쓸 일을 한 자는 잡아다 멍석에 말아 때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회의기구이자 감독기구 역할을 했음을 암시하는 대목. 좌상을 역임한 전오복(61)씨는 "10여년 전쯤 없어졌으나, 전에는 푸꾸 때 순흥읍내 은행나무 밑에서 제를 올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술을 나눠 먹고 농악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또 이날 남녀 품삯도 정했다는 것.

3회에 걸쳐 14년간 좌상을 맡고 있는 손상헌(70) 옹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으로 고을이 폐부되는 아픔을 겪은 뒤 주민들이 금성대군을 마을 신 같이 우르러 초군청이 매년 정월 보름에 그의 서낭제를 모셔 왔다"고 했다. 초군청은 지금도 음력 초사흗날 금줄을 치고 목욕재계 하면서 제를 준비, 열나흗날 자시에 금성대군 원혼을 우르러 제를 올리는 것이다.

◇지금의 초군청=초군청 좌상 집에는 지금도 '순흥 초군청 인(印)'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손상헌 좌상은 "직인 찍힌 문서는 순흥부사 문서와 맞먹는 위세를 행사했다"고 옛일을 전했다.

직인 외에도 유물로는 성황당 중수 모연문, 역대 좌상 및 역원 등 조직원을 기록한 '임원록', 고사 제관 관련 기록인 '두여 고사기', 장부인 '성황당 수입지출부'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초군청의 기능과 권한은 시대 변천을 따라 많이 축소됐다. 황시준(60) 고문은 "푸꾸, 품삯 조정 등은 도로 포장 및 기계화로 없어지고, 오늘날에는 읍내 비봉산 본당과 두레골 상당의 성황제를 모시는 전통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손상헌 좌상은 "성황제를 모시기 위해 500여만원의 경비를 마련해야 하고 부정 타지 않게 각종 금기를 지켜야 하니 임원을 맡으려는 사람도 잘 없다"고 했다. 이때문에 소수서원 박석홍 학예연구원은 "이제 구전 등을 토대로 자료를 체계화하고 연구·보전해야 할 시기가 닥쳤다"고 걱정했다.

◇초군청 재조명 작업=영주시청은 민속예술 축제 때 초군청을 주제로 놀이를 개발해 첫 공연할 예정이다. 기획·감독은 연극인 손진책(극단 미추 대표, 영주 출신)씨, 대본은 전문 작가 윤대성씨, 민속자료 발굴은 조재현(소백극예술단 대표)씨에게 맡기기로 한 것. 이달 중 대본이 완성되면 다음달 초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 갈 계획이다.

작품은 서당 유생 마당, 초군청 등청 길 놀음, 순흥부사와 초군 좌상 상견 의례 마당, 초군청 재판놀이 마당, 초군 지게춤 마당, 소(牛)장 마당 및 양반 소 간택 그리고 두레골 성황당제, 줄다리기 마당, 지신터 밟기 마당 등 여덟 과장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작품이 더 다듬어지면 내년 말 선비촌 개원 이후 관광객들의 볼거리 및 참여 프로그램으로도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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