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짭짤한 시청률을 올리는 '연예가 소식'류의 TV 프로그램들은 어떤 층이 가장 즐겨 보고 있는 걸까.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연예가 동향은 톱탤런트들의 호사스런 결혼식, 결혼 발표 기자회견 장면을 비롯한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들을 조명하는 데 급급할 정도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내용들을 과대 포장해서 내보내지만, 보는 사람이 많다는 데 문제가 있고, 그 쪽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데는 더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여성들을 위한 잡지 역시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에 관한 기사와 가볍고 잡다한 세상 이야기들로 넘친다. 어느 탤런트가 병원에 입원해 링거를 맞고 있다느니, 누구랑 사귀고 살고 헤어지게 됐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로 메워져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인기 연예인들이 전쟁영웅처럼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는 세태다. 어른들도 이 모양인데 감수성이 민감한 10대 소녀들이야 오죽하겠는가.
10대 여학생들을 주대상으로 하는 '문구점 잡지'의 인기가 폭발적인 모양이다. 1998년 말 문구 판촉용으로 등장한 'MRK'는 8월호를 32만부나 찍었으며, 지난 3월부터 나오고 있는 '와와일공구'도 12만부 이상 발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정도면 웬만한 기성잡지 판매 부수의 몇 배가 되는 셈이다. 이 바람을 타고 'MRK'를 발행하는 '미스터 케이'의 경우 아예 주력 업종을 문구가 아닌 잡지 출판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문구점에서 2천원 정도에 팔고 있는 이들 잡지는 패션.댄스.미용.다이어트.애니매이션.연예인 소식 등을 주로 담고 있다. 캐릭터.메모장.패션형 편지 등이 곁들지기도 한다. 이즈음 10대 소녀들의 정보 욕구가 어디를 향해 열려 있으며, 좋아하는 것이 무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면 우려되는 점들이 적지 않다. 청소년들을 겨냥한 잡지들이 올바른 독서거리를 제공하기보다 너무도 얕은 유행만 뒤좇는 꼴이기 때문이다.
하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청소년 잡지인 '세븐틴(Seventeen)'도 화장.옷.연예인.영화.음악 등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매달 고등학교 하나를 소개하고,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만 하거나 가져야 할 시사.교양 등의 중요한 문제들도 반드시 다룬다. 우리는 아직도 청소년들의 선호에 부응하면서도 건전한 정서 함양과 교양을 높여 주는 '제대로 된 잡지'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 그 무거운 책임은 청소년들보다 어른들에게 있는 건 아닐는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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