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의 시어머니들은 너나없이 모두 다 괴롭다. 젊어서 시어머니를 모실 때는 꼼짝 못하고 죽어지냈고 이제 나이가 들자 똑똑한 며느리에 치여 살게 됐다. 애지중지 귀하게 키워놓은 자식도 이제는 마누라밖에 모른다.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의지할 수 없게 돼 쓸쓸하기만 하다.
며느리들도 할 말이 많다. 뼈빠지게 일해도 생색나지 않는 시집살이에 고생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심하면 우울증에도 빠진다. 오죽하면 '시어머니'와 같은 돌림자인 '시금치'까지 싫어하겠는가? 시금치뿐만 아니라 '시'자가 붙은 말엔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게 며느리들의 공통된 심리.
고부갈등엔 묘약이 없어보이는듯도 하다. 부부문제보다 고부갈등으로 금이 가고 결국 부서지는 가정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 '딸 같은 며느리'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고부들도 적지 않다. 특히 시대가 바뀌면서 어른들의 이해 폭이 넓어지고 신세대 며느리들도 애교로 무장,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며 고부의 정을 두텁게 쌓아가기도 한다. 갈등이란 없다. 이들로부터 '웃으며 재미있게 사는 고부' 그 비결을 알아본다.
◆40대 프로 며느리
김영옥(47·대구시 달성군 옥포면)씨와 시어머니 김순리(78)씨는 고부라기보다는 친정엄마와 딸 같다. 시어른을 모시고 산 지 23년째. 분가는 결혼 후 남편 직장 때문에 1년간 떨어져 산 것 외에는 생각한 적이 없다.
"새댁일 때는 시어머니가 불편해하시는 듯한 낌새라도 보이면 언제 어디서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고 잘못을 빌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어머니가 너무 며느리를 예뻐해 딸들이 질투할 정도. 미운정 고운정 다 든 상태라 친정부모만큼이나 편하다.
이들 고부가 모녀같이 지낼 수 있는 첫번째 비결은 대화다. 며느리 김씨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시시콜콜 다 얘기한다. "어머님은 제 친구들을 다 천사같은 사람들로 알고 있어요. 모임에 갔다 와서 친구들 좋은 점만 계속 얘기했기 때문이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목욕탕에도 함께 다녔다. 서로 등을 밀어주고 하다보면 작은 서운함도 싹 가신다. 하도 다정하게 목욕하는 그들을 보고 이웃들은 처음엔 '왜 저집 딸은 엄마하고만 목욕탕엘 다닐까' 궁금해했을 정도다. 시어머니 김씨는 특히 사람들이 "딸인가요?"하고 물으면 매우 기뻐한다.
이런 가정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남편의 역할도 컸다. 남편은 아내가 한번씩 쏟아내는 불평 불만을 다 빨아들이는 스펀지이다. 어쩌다 시댁 흉을 봐도 웃으며 받아주는 남편이 김씨에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30대 초보 며느리
6년 전 결혼한 김정수(35·대구시 남구 대명동)씨는 요즘 기분이 썩 좋다. 남편이 시집살이하는 자기 입장을 잘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심각한 고부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혼 초 작은 일로 시어머니께 섭섭한 마음을 가진 적도 종종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섭섭해 하고 오해가 생기게 되는 것이 바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아니던가. 그럴 때마다 남편은 '당신이 좀 참아라'는 투였다. 그럴때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런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맏며느리로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될까? 당신 입장 다 이해하고 있다구". 의외였다. 그렇게 무뚝뚝한 남편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나중에 남편의 계산된 중립정책(?)이란 걸 눈치채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 편을 들면 아내가 토라지고 아내 입장을 대변하려 하면 어머니가 서운해할 건 뻔했다. 성격상 어려울 것 같던 말까지 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시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초보며느리 시절이 지나고 이젠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법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친정엄마와는 또 다른 고부간의 정을 키워가는 중이다. 요즘은 옷을 사더라도 시어머니가 골라준 옷을 입는다. 직장여성인 며느리를 위해 백화점 옷을 고집하시는 시어머니가 고마워서다. 손을 꼭 잡고 매장을 둘러보는 것은 친모녀도 그럴 수 없다. 며느리 김씨는 그래서 시어머니의 '시'자를 요즘은 깜깜 잊고 지낸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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