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석(52)씨,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검게 그을린 건강미 넘치는 얼굴과 겸손이 밴 말투는 그가 산(山) 사나이임을 쉽게 짐작케 해준다.
그는 치열한 생활인답지 않게 식당일에 무관심해 보인다. 북적대던 손님들이 식당을 떠나기가 무섭게 홀 한쪽에 놓아둔 컴퓨터 앞에 냉큼 다가앉는다. 전국의 산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서다. 답사와 안내 등 한 달에 4번 이상은 산을 오르느라 식당을 비우는 일도 흔하다. 그 탓에 '아예 산에서 살아라'는 아내의 핀잔도 감수해야 한다.
회원 200여명의 '신천 산악회' 총무이기도 한 권씨의 산사랑은 독특하다. 그는 아마추어 산행 소식지 전문가다. 오랫동안 즐겼던 낚시부터 등산까지 20년째 소식지를 만들어 오고 있다. 그가 회원들에게 매월 보내는 산행 소식지는 '때와 장소, 준비물' 소개로 간단히 끝나는 보통 산행 안내 엽서와는 사뭇 다르다.
그가 만드는 소식지는 두툼하다. 역사적 배경을 비롯, 오를 산에 관한 상세한 안내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떠오른 단상, 법구경(法句經) 한 구절, 건강 십계, 삼림욕, 백두대간의 의미, 응급 처치법, 배낭 꾸리는 법, 만화로 보는 등산백과 등 갖가지 정보로 가득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산제(始山祭:산악인들이 매년초 산신에게 지내는 제사)의 의미와 방법, 직장에 첫발을 내딛는 자녀를 둔 회원들을 위한 직장생활 가이드까지…그야말로 생활정보지 수준이다. 그렇다보니 그가 발행하는 소식지는 매회 6, 7장에 이른다.
알찬 소식지는 그만큼 권씨의 비용 부담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인터넷과 서적 검색,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 자료 확보에서부터 제작, 인쇄, 복사, 200여명 회원들에게 우편물 보내기까지…매월 10만원을 웃도는 사비가 지출된다. 여기에 산 높이별 산행횟수, 참가 인원, 나이와 산높이를 비교해 통계를 내기도 한다. 나이든 회원들의 산행 참가 여부 결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이 모든 일을 권씨는 식당 한 구석에서 혼자 해낸다. 컴퓨터를 장만하기 전에는 손으로 직접 작성했다. 자를 대가며 반듯하게 그린 막대 그래프는 어떤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그러니 권씨와 함께 오르는 산은 막연하게 오르고 땀흘리는 행위가 아니다. 똑같은 풀, 똑같은 계곡이지만 그의 소식지를 끼고 오르면 훨씬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산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모양이다.
그 덕분일까. '신천 산악회' 회원들의 등반 성공률은 80~90%를 웃돈다. 항용 나이든 사람들의 산행이 대체로 산 아래에서 먹고 마시기로 끝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권오석씨는 산행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연락해주기를 바란다. 산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식지도 보낼 생각이다.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는 아마추어 산행 가이드가 있다. 산 아래까지 갔다가 매번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던 사람들, 먹고 마시는 걸로 산행을 망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한번쯤 그의 소식지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053)755-0936.
조두진기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