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타고 내려오는 신비로운 뱀
벌써 멕시코 고대문명 답사 열하루째. 바야흐로 여정(旅程)은 막바지로 치닫는 셈이다. 이제 둘러볼 치첸잇사(Chichen Itza)는 예정된 마지막 답사지이고다음날 이곳과 가까운 세계적인 휴양도시 깡꾼에서의 휴식을 기대하면서 엄습해 오는 피로감을 떨쳐내었다.막 떠나온 메리다란 도시는 퍽 인상적이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다녀본 몇몇 도시들 가운데 살아 볼 만한 곳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이곳을 선택할 정도로 정감(情感)이 가는 도시였다. 메리다 인류학박물관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로 원래 개인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와 비슷한 외양의 건물들이 같은 거리에 즐비하였는데 이들은 백여 년 전에 백인(白人) 부자들이 축적한 부(富)를 한껏 뽐내기 위하여 서로 경쟁적으로 지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 속에는 백여년 전 쯤 이곳에 반(半) 강제로 옮겨와서 노동을 착취 당한 애니깽들의 피와 땀도 적지 않게 배어 있으리라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메리다 인류학 박물관의 전시유물은 상당하였는데 그 중 머리가 납작한 편두(偏頭)를 한 마야인의 인골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 삼한사회에서 행해진 습속과 거의 같아 비교 검토해 볼 만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야 고전기 후반기에 번창
메리다에서 두 시간 가까이 달려 치첸잇사에 도착하였다. 중앙 아메리카 남부의 밀림에서 번성한 마야문명의 고전기 후반기에 번창하였던 도시인치첸잇사는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만큼이나 유적지 정비도 잘되어 있었다. 치첸잇사란 마야어로 '우물가 잇사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유까딴 반도 최대의세노떼(성스러운 샘)를 중심으로 이 도시가 번성한 점으로 미루어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치첸잇사 유적군은 마야문명의 특성이 두드러진 마야 고전기에 속하는 '구(舊)치첸잇사'와 똘떼까 문화가 접합 내지 융합한 10세기 이후의 후고전기에 속하는 '신(新)치첸잇사'의 2개 지구로 나뉜다. 7세기에 융성한 구 치첸잇사는 마침내 쇠퇴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일단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그러나 10세기 중앙고원의 패권을 장악한 전투 부족인 똘떼까 인들과 손을 잡아서 다시한번 번성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흔히 '마야-똘떼까문명'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신 치첸잇사이다. 신 치첸잇사는 군사국가로 변모하여 영화를 누리다가 13세기초 마야빤족에 의해 멸망하면서 오랜 역사를 마감했는데, 우슈말 등과 함께 마야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지였다. 물론 구 치첸잇사에도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신 치첸잇사에는 그 옆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규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문화의 성격도 달라졌다. 건축 양상에서도 그러하려니와 호전적(好戰的)인 병사의 상이나 '깃털달린 뱀'(이를 똘떼까에서는 '껫살꼬아뜰'이라고 하지만 여기에서는 '꾸꿀깐'이라고 함)에 대한 숭배, 인신공양 등에서 멕시코 중앙지방의 영향이 강하게 미쳤음이 엿보인다. 그래서 흔히 전투적인 똘떼까인들에의해 마야가 정복되어 신 치첸잇사가 건설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를 정복이 아니라 주민 이주에 의한 문화접합이나 혹은 교류의 결과로해석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365개 계단 태양력 상징
치첸잇사는 초기에 형성된 구 치첸잇사와 후기에 조성된 신 치첸잇사 구역이 뚜렷이 구분되는데, 역시 규모나 내용면에서 신 치첸잇사의 것이 주목을끌었다. 이 구역은 길이 2km 정도의 돌담으로 구획되는데 신관(神官) 등 정치적 지배자가 거주하는 신성지역과 일반인의 거주지를 구분하기 위한 의도에서였으리라. 신치첸잇사 중앙부에는 엘 까스띠요(El Castillo) 또는 꾸꿀깐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웅장한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까스띠요란 스페인어로 성(城)을 뜻하며 꾸꿀깐을 주신으로 모신 신전으로 9세기초에 완성됐는데, 그 자체로 마야의 달력을 나타내고 있다.
즉 까스띠요는 밑변 55.5m, 높이 24m에 달하는 4면체의 피라미드로 사방의 계단이 각각 91개씩(91×4=364) 전체 364개에다가 제일 상층의 1단건축물을 더하면 도합 365개로 그 자체가 태양력을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또 까스띠요의 기단부는 9층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앙의 계단에 의해 양측으로분리, 전체 18단이 되므로 1년을 18개월로 나누던 하아브력(曆)의 달수를 나타낸다. 더욱이 각 기단에는 패널(움푹 팬 부분)이 한면에 52개씩 있다.이것은 농경에 사용된 하아브력(1년 365일)과 제사용 쫄낀력(1년 260일)의 2가지가 겹치는 52년의 달력의 주기를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이런 해석은 마치 신라시대 첨성대(瞻星臺)에 대한 해석과 비슷한 면을 보였다. 첨성대도 구조로 봐서 천체를 직접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천체와 별자리, 월력과 일력 등을 나타낸 상징물로 해석하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꾸꿀깐 숭배에 바쳐졌던 사면 신전 피라미드 까스띠요는 위로 가면서 양측에서 내밀어 쌓음으로써 아치모양을 이룬 천장을 가진 정상부의신전으로는 숨찰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까스띠요의 내부에는 세부가 정말 잘 보존된 이전 시기의 피라미드가 이중으로 들어있는데, 원래 있던 신전을 이용하여 외부에 돌을 덧씌워 신전을 크게 만든 것이었다. 내부 신전은 다른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날씨가 무더운데다가 돌로된 내부의 급경사 통로를 타고 올라가니 땀이 비오듯 하였다. 꼭대기에 오르니 마야인들에게 공포와 강인함의 대상이었던재규어상이 있다. 눈과 점을 72개의 비취옥으로, 이빨을 조가비로 박고 붉은 색으로 칠해진체 하얀 이빨을 드러낸채 포효하듯이 서있는 재규어의 앞에는다음회에 다룰 차끄몰(Chacmool)이 있다.
◈춘분.추분때 '꾸꿀깐'나타나
이 까스띠요의 중심축은 북동-남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춘분과 추분, 즉 태양이 정확히 정동쪽에서 뜨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바로 그 날에 맞추려는 것이라 한다. 이 날 오후가 되면 북쪽계단의 서쪽면에 비치는 태양의 그림자로 거대한 일곱 개 무늬가 만들어져 마치 꿈틀거리는 뱀의 모습 즉 꾸꿀깐의 형상이 나타난다지만 답사시점이 춘.추분이 아니어서 직접 목격할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매일 밤에는우슈말에서처럼 형형색색의 야간 조명이 까스띠요를 비추며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여하튼 이는 당시 마야의 건축술이 얼마나 정교하게 계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어서 정말 놀라웠다. 신전의 북쪽으로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그만 제단 앞에서 신전을 향해 손뼉을 치니 독수리 울음소리로 변하여 되돌아오는 신기한 장면을 체험하고서 공명까지 고려한 마야인의 뛰어난 건축술을 실감하였다. 돌을 도구로 삼았던 멕시코 고대문명이 이렇게나 발달할 수가 있었는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도저히믿기지가 않았다.
글 주보돈(경북대교수)
사진 최종만(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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