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호! 여름엔 밤이 최고-우리는 야호족

'야호족(夜好族)'이 여름밤을 낮처럼 밝힌다. 낮에는 활동을 자제했다가 밤에 쇼핑, 운동, 영화, 술자리 등을 즐기는 이른바 야호족이 늘고 있다.

낮 기온이 35도를 웃돌아 일상 활동을 하기 어려운데다 도시인들을 위한 각종 생활여건에서 밤·낮 구분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밤 10시20분쯤 대구시 북구 칠성동 홈플러스 대구점. 폐점시간을 1시간 40여분 밖에 남겨두지 않았는데도 주차할 곳이 없어 한참을 맴돌아야 했다. 매장 안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쇼핑객들이 환한 조명과 '빵빵한' 에어컨 냉기 아래에서 바캉스 준비물과 생필품을 고르고 있었다. 캄캄하고 후텁지근한 바깥과는 딴판이었다.

홈플러스는 심야쇼핑족이 늘면서 지난 6월부터 평일 폐점시간을 밤10시에서 자정까지로 연장했고, 동구 검사동 한국까르푸 동촌점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는 등 대부분 할인점들이 심야쇼핑객 유치를 위해 영업시간을 앞다퉈 연장하고 있다.

폐점 시간에 임박해 실시되는 '타임서비스'는 야채와 과일 등을 대폭 싸게 살 수 있어 심야 쇼핑족들만이 느낄수 있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한국까르푸 동촌점 박인범 총무부장은 "밤 10시 이후 심야 손님이 전체 고객의 30% 안팎에 이르고, 자정부터 새벽 2시대의 손님도 증가 추세"라며 "날씨가 더운데다 퇴근 후 부부와 자녀가 함께 차를 몰고 와 시장을 보는 쇼핑문화가 정착되면서 심야쇼핑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새벽 0시30분쯤, 경북대 북문 앞 상가 일대와 복현오거리 막창골목은 불야성(不夜城) 그 자체였다. 술집이나 식당마다 대학생, 데이트족, 밤참을 먹으러 나온 가족들로 시끌벅적했다. 이른 밤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마냥 길어진 것이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자정을 전후로 술자리를 시작했다.

로바다야끼 주점에서 만난 이동준(22·대학생)씨는 "방학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밤 10시쯤 친구들과 모이게 됐다"며 "날씨가 더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종종 밤 늦게 술자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일대에는 새벽 2시가 넘도록 귀가하는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들이 길게 줄을 지었다.

놀이공원인 우방타워랜드는 여름밤 야호족이 즐겨찾는 대표적인 곳. 도심 한 복판이지만 숲이 잘 조성돼 있어 밤에는 시원하고 불꽃놀이, 다이빙쇼 등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일부터 8월30일까지 영업시간을 연장, 자정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

우방타워랜드에는 여름철엔 오후 6시 이후 심야손님이 하루 전체 이용객의 70%를 넘는다. 우방타워랜드 홍보팀 윤창원 대리는 "한여름에는 낮보다 저녁 식사 시간 전후로 가족이나 연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폐장을 했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피서객들이 많아 직원들이 홍역을 치른다"고 털어놨다.

대구근교의 자동차극장에도 한낮의 더위를 피해 영화를 보러가는 야호족들이 많다산격동 유통단지 내 섬유제품관에 있는 '씨네 스카이'에는 주말 밤의 경우 160여대의 주차공간(관람석)이 꽉 찰 정도로 붐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이지만 '이열치열'을 외치며 운동으로 땀을 빼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추세.

운동시설과 놀이터 등을 갖춘 대구 신천둔치에는 오후 6시쯤부터 새벽까지 더위를 피하러 나온 시민들이 많다.

신천둔치를 찾는 시민들은 가로등 아래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체육시설을 이용해 땀을 빼는 경우가 대부분.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이웃들이 '고스톱'으로 친목을 다지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볼링, 골프, 헬스 등 스포츠센터도 야간에 더 붐빈다. 대부분 낮시간이 바빠 밤 시간이 운동을 하기 좋은데다 여름철엔 밤에 운동을 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면 숙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

수성구 지산동 동아스포츠센터 내 볼링장에는 한 낮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반면 밤 7시부터 밤 11시 사이엔 북새통을 이룬다.

동아스포츠센터 김광범 주임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탓에 심야에는 저녁식사를 한 후 편안한 옷차림으로 가족이나 부부끼리 운동을 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야호족의 원조는 4~5년 전 서울 동대문 상가의 '올빼미 쇼핑족'. 동대문 시장 일대에 대형 쇼핑몰인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이 등장하면서 '심야쇼핑'이란 신풍속이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벤처기업이 밀집한 테헤란로 등 서울 각지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음식점, 카페, 미장원, 사우나, 헬스클럽, 택배업체 등이 확산되고 있다.

계절적 요인은 1차적이다. 산업과 정보가 발달하고 생활방식이 급변할수록 밤과 낮의 경계는 하루가 멀게 허물어 지고 있다.

그렇다면 야호족들이 '여름 철새'로만 남아있을 수 있는 날이 많지는 않겠다. 머지않아 '겨울에도 야호족'이란 기사가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질지도 모른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