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데 나이가 따로 있나...'. 시정에 푹 빠진 노년이 아름답다. 나이를 잊은 창작열과 여유로운 삶의 자세로 늦깍이 등단하는 노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랜 삶의 역정을 지나와 거울 앞에 앉은, 미당의 '국화 옆에서'를 떠올리는 시정들 . 노시인들의 시세계는 그만한 삶의 무게와 깊이를 더해준다. 그들은 칠십을 넘긴 나이에야 듣게 된 어엿한 '시인' 호칭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못내 즐겁기도 한 표정들이다. 시심에 젖은 노년, 그 자체가 이미 한편의 완숙한 시가 아닐까.
국내 최고령 등단이란 기록으로 2001 기네스북에 등재된 노만균(73.남구 대명동)씨는 계간문예지 '문예한국' 2000년 겨울호에 '산사나이' 등 4편의 시로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인이 됐다.
3년전 친구 전상열 시인(작고)에게 시작(詩作) 수업을 받고 김원중 시인(포항공대 교수)의 추천으로 '최고령 문학계 등단'이란 기록을 세우게 된 것. 노씨는 "등산을 하며 떠오르는 시심을 한두장씩 긁적여 옮기다 보니 200여편의 시가 됐다"며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5월 문예사조로 등단한 김영임(金榮壬.70.남구 봉덕2동)씨도 고희기념 시집 '일상의 뜰에서'(도서출판 문예사조)를 출간했다. 여고시절부터 키워온 문학의 꿈이 칠순에야 결실을 맺었다는 김씨는 조선 여인의 매무새를 잃지않고 살아온 세월의 두께 만큼이나 원숙한 사유와 정감 넘치는 시를 선보였다.
본인은 '일상의 뜰에서 주어모은 작은 조각들'이라 겸양을 앞세우지만, 삶에 대한 관조와 감각적이고 사회성 있는 표현을 구사하는 문학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예순 중반에 시에 입문한 늦깎이 시인 변영숙(72.달서구 상인동)씨는 지난 5월 '오디빛, 꽃댕기 쪽찌고'(사람의 문학)란 첫 시집을 냈다. 변씨는 대구의 시공부 모임인 문학 아카데미 교실에서 공부하는 주부들 가운데서도 최고 연장자.
진솔하면서도 소박한 시어들로 꾸밈없는 삶의 정서를 풀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비록 늙으막에 토해내는 소박한 감정들이 다소 평이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삶의 무게가 실린 가만한 노래가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오랜 교단생활을 명예퇴직한 임제훈씨(64.달서구 신당동)도 월간 한국시 7월호에 시 '자개농'외 2편이 당선돼 늦깍이 시인이 됐다. 캠퍼스 시절의 문학적 열정을 늙으막에 되살려 지난해 9월 '조용한 새벽'이란 시집을 엮기도 했던 임씨는 "몇년 묵은 도라지라도 캘 요량으로 운무에 가린 영산골짜기를 무턱대고 들어섰다"고 등단의 감회를 밝혔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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