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의 거부들이 '유산세(한국의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고 나서 우리의 정서로는 아이러니컬하게 비칠 정도로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부시 대통령이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할 것을 제안하자 수혜자가 될 부자들이 되레 이를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석유왕 록펠러의 후손인 데이비드 록펠러,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가인 워런 버핏,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 빌 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 등 억만장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 자체도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그 이유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워런 버핏은 죽을 때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상속세 유지가 능력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는 사회를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상속세를 폐지하면 억만장자들의 자식만 살찌게 하고 땀 흘리며 살아가려는 가정에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감동의 드라마가 연출돼 세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막노동 출신으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82세의 실향민 강태원(경기 용인시 기흥읍)씨가 충북 청원군의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에 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증해 화제다. 평양이 고향인 이 입지전적인 인물은 광복 때 혼자 월남해 막노동판을 전전,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포목상을 시작했고, 서울에서 버스회사를 운영하면서 자수성가한 큰 부자다.
끼니를 굶고 잠을 아끼면서 돈을 번 그는 허튼 데는 절대 돈을 쓰지 않는 구두쇠였다. 심지어 5남매가 대학 공부를 마치고 결혼할 때까지 자립심을 키웠고, 집 한 채씩 장만해준 게 전부일 정도다. 그의 아버지는 평양 지주였지만 자식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가르침이 실천으로 이어지고, 자식들에게도 재산 상속은 아편과 같다는 인식을 심어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존경을 받고 있는 경우에 다름 아니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책은 '돈의 부족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시각에서 쓰여졌다. 하지만 가난이 미덕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왜곡된 부야말로 사회악이다. 우선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씨,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 등이 떠오르지만 우리의 '진짜 부자'들도 부의 편중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가. 재산의 사회 환원은 능력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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